ADVERTISEMENT

[무너지는 가정]“돈 때문에 갈라선다”4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IMF 사태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가정마저 붕괴시키고 있다.

◇ 이혼 = 지난달말 가출한 뒤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는 주부 金모 (35) 씨는 현재 이혼수속을 밟고 있다.

화물차 기사로 일하던 남편 (39) 이 IMF 이후 일거리가 줄자 "다른 집 부인처럼 돈을 벌어오라" 고 다그치는 데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 해체의 가장 단적인 예는 이혼이다.

매달 엇비슷한 수치를 보이던 서울가정법원의 협의이혼 신청건수가 지난 1월 5백24건, 4월 7백10건, 7월 8백30건 등 날이 갈수록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 가정상담소에 접수된 이혼상담 역시 1월에는 29건에 그쳤으나 5, 6월에는 각각 1백45건, 1백86건으로 늘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경우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 가 있다는 상담자 (4백91명) 가운데 24%가 경제갈등, 15%가 빚, 9%가 생활무능력을 지적하는 등 전체의 절반 가량이 경제문제를 이혼사유로 내세웠다.

◇ 자녀양육 포기 = 지난 2월과 3월 엄마.아빠가 차례로 집을 나간 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李모 (5) 양은 5개월째 엄마가 달아준 명찰을 가슴에 달고 있다.

명찰을 떼버리면 엄마가 돌아와도 자신을 못알아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 문영이 판사는 "최근 협의이혼을 하러온 30대 부부가 자녀 양육문제에 대해 '경제적 능력이 생길 때까지 고아원에 맡길 생각' 이라고 말하더라" 며 "IMF 이후 이런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고 혀를 찼다.

부산.광주 등 전국 8개 영아일시보호소에는 기업 도산이 급증하던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용아동 수가 20~1백%까지 늘어났다.

보건복지부는 가정해체를 최대한 막고자 생활보호대상자 자녀에게 한정되던 아동보호시설 수용 규정을 고쳐 지난 1월부터 실직가정 자녀들도 6개월 동안 무료 입소할 수 있도록 했다.

◇ 부모가출 = 아이를 버리는 대신 부모가 집을 나가 가정이 무너지는 경우는 더욱 흔하다.

경찰청이 집계한 20세 이상 성인 가출건수는 6월말 현재 1만2천8백99건. 하지만 신고되지 않은 경우를 합한다면 10만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경찰 추산이다.

이들 대다수가 가장이나 주부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내 가출로 고민하는 남성들의 상담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려오는 남성의 전화 이옥 소장은 "과거 주부 가출은 남편의 외도나 고부갈등이 주원인이었으나 최근엔 경제적으로 무력한 남편을 못참거나 자신이 돈을 벌려다 진 빚 때문에 집을 나가는 30대 여성이 대부분" 이라고 말했다.

◇ 가정폭력 = 전문가들은 이같은 가정 해체를 촉발하고 급속히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가정폭력을 꼽는다.

올해 1분기중 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상담중 구타로 인한 이혼사유는 전체의 34%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9%에 비해 5% 가량 늘었다.

아동학대상담소.노인의 전화 등 관련단체에 따르면 IMF사태 이후 자녀에 대한 폭력, 노부모를 구타하는 패륜행위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