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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풀이 부엉이’와 ‘지혜의 부엉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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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그러나 친노 세력의 정치 세력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키를 쥔 이 전 총리 본인부터 신중한 행보다. 그는 친노 신당 대신 민주당과의 통합이 옳은 길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현재 구도를 유지하면서 친노 세력을 흡수하는 형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또 친노 세력은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 생전 그와 등을 돌리려 했던 과거를 좀 더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고 여긴다. 친노 일각에선 “당에 호남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친노들은 신당이냐 복당이냐를 놓고 숙의를 거듭하면서 복당 여부를 묻는 언론엔 손사래만 친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머리가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1일 취임 1주년 기념 회견에서 “친노를 포함한 대동단결이 국민의 뜻이며 기득권을 포기하고 제2 창당에 버금가는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친노 세력은 통합의 전제로 명예회복과 합당한 지분을 요구한다. 당내 비주류는 비주류대로 친노들의 복당이 자신들의 입지 축소로 이어질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친노나 민주당이나 복당을 서두르기 힘든 더 큰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실리나 챙기려는 집단으로 비치면 안 된다는 속내 때문이다. 그런 걱정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부엉이’를 자처하는 국민들이 생겨난 진짜 이유를 헤아려야 한다. ‘부엉이’란 말엔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숨진 노 전 대통령의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투영돼 있다. 그러나 이는 부엉이들이 결집한 계기에 불과하다. 부엉이들의 본질은 노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소통’의 실현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민생, 더 수준 높은 정치를 실현하자는 민심의 물결이다. 친노나 민주당이나 부엉이 바람을 타고 ‘한풀이 정치’에 급급하다면 자유·개인·다원주의와 글로벌리즘의 자식인 부엉이들은 금방 떠나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또 다른 방향에서 ‘불통(不通)’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진짜 대장 부엉이가 되고 싶다면, 부엉이가 원혼(怨魂)이 아니라 지혜의 상징이라는 상식부터 되새겨야 한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