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재를 이기는 자원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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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수마 (水魔)가 할퀴고 간 재해지역 곳곳에서 힘찬 복구의 삽질이 시작됐다.

호우가 다소 소강상태를 보인 9일부터 본격화된 복구작업은 그러나 예고없이 치고 빠지는 '게릴라 폭우' 때문에 한쪽에서는 쓰레기더미를 치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덤비는 물길을 막기 위해 흙마대를 쌓는 식의 악전고투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난리' 속에서도 재난을 당한 이웃들을 돕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우리들을 살맛나게 해준다.

수해당사자도 아니고 어찌보면 아무 관계도 없는 이들의 '이웃사랑의 정 (情)' 은 이 무덥고 짜증스런 물난리 속의 청량제가 아닐 수 없다.

기업단위의 봉사단이 이미 현장에 투입됐고 연중내내 자원봉사운동을 펼쳐 온 중앙일보에도 물난리 직후부터 봉사신청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봉사자들 가운데는 피서여행 대신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고통을 나누는 대열에 참여한 가족단위의 신청자들이 적지 않으며, 나이 어린 중학생들까지 수해지역으로 달려가는 눈물겨운 정경도 눈에 띈다.

일견 당연할지 모르지만 공무원들과 민방위대원들의 노고에도 격려를 보내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10일 하루에만도 복구현장에 투입된 10만여명의 군장병들에게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이같은 모든 이의 노력은 실의에 빠진 수재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고난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현장에 다녀온 자원봉사자들은 이번 수해가 너무 심각해 "더 많은 손길과 더 많은 장비가 절실하다" 고 입을 모은다.

쓰레기만 해도 상류지역에서 휩쓸려온 것에 물에 잠겨 쓸모가 없어진 내집 가재도구까지 겹쳐 장비 없이는 손댈 엄두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서울에서는 청소장비와 인력이 중랑천과 안양천변 수해지역에 집중 투입되는 바람에 다른 지역에서 쓰레기대란이 시작되고 있다.

물난리 속에서 그나마 상수도시설마저 망가져 먹을 물이 모자라고,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빨래가 마를 새 없어 입을 옷도 부족하다.

이재민 수용시설에는 모포가 모자라 한밤중에는 한기에 떤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서울의 경우 6만2천명의 이재민에게 겨우 1만4천여장의 모포가 지급됐고, 그나마 늑장지급사례까지 있었다.

한 모금의 먹을 물, 한 벌의 마른 옷, 온기어린 모포 한 장, 재기를 북돋아주는 부축의 손길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고 여기에는 민과 관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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