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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22>‘가짜 문인’ 소동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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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호 10면

1975년 이른 봄 무렵의 일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침나절 문화부 데스크에 전화가 걸려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젊은 여성이었다. 처음부터 격앙된 목소리로 신문이 이런 잘못을 저지르면 어쩌느냐고 따졌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느냐,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하는 말이 이랬다.

어제 신문 문화면에 실린 ‘소설 월평’에 박범신의 사진이 들어갔는데 자신이 박범신과 자주 만나는 사이지만 그 사진은 박범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자기는 박범신의 사진이 들어가고 직접 서명한 그의 단편집도 가지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이번에는 풀죽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정황을 상세하게 설명한 다음 혹 피해를 봤다면 경찰에 신고하라 이르고 전화를 끊었다.

한데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떤 신문 사회면에 ‘문인 사칭 사기 조심’이라는 제목의 가십성 기사가 실렸다. 어떤 30대 청년이 젊은 소설가들의 단편소설 여러 편을 묶어 인기작가 아무개의 이름으로 출판한 다음 자기가 그 ‘아무개’라며 책을 기증하는 등의 수법으로 몇몇 여성을 농락하고 금품을 갈취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그 ‘아무개’가 박범신인지 또 다른 소설가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50년대 후반의 ‘가짜 이강석’ 사건 이후 주로 고위층이나 유력 인사를 사칭한 사기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음을 감안하면 ‘문인 사칭’은 다소 이례적이었던 셈이다.

수법과 목적은 달랐지만 문인을 사칭한 사례는 60년대에도 있었다. 황석영이 62년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가작 입선한 후 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문학을 지망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황석영은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서울역 앞 ‘역마차’ 다방에는 주말마다 스무 살 안팎의 고등학생·대학생들이 모여들어 ‘문학의 밤’ 따위의 행사를 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황석영을 자처하는 20대 청년이 나타나 해박한 지식과 능란한 화술로 모임을 휘어잡더니 이내 ‘좌장’으로 군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모임의 단골이었던 몇몇 젊은이가 70년대 이후 문단에 데뷔해 문인으로 활동하게 되거니와 그들의 회고를 들으면 그 무렵의 ‘가짜 황석영’이 얼마나 진짜 같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그 자리에 ‘진짜 황석영’이 나타났다 해도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젊은이가 들고 일어나 ‘진짜 황석영’은 쫓겨났으리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 가짜가 황석영의 이름으로 사기행각을 벌였거나 다른 젊은이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증언은 없고 보면 그저 황석영 같은 작가가 되고 싶어 한동안 황석영의 행세를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이름을 판 가짜로 가장 큰 곤욕을 치른 문인은 고은이었다. 고은이 문명을 떨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전국 각지에 ‘가짜 고은’이 출몰했다. 고은은 서울에 있는데 영남·호남·강원 등 전국 대여섯 군데에서 동시에 고은이 나타나 여성들을 농락하는 등 사기행각을 벌인 것이다. 그래서 ‘가짜 고은은 홍길동’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

60년대 막바지에 드디어 ‘가짜 고은’이 서울에도 나타났다. 어느 날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고은은 그 여성이 ‘가짜 고은’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은은 그 여성을 만나 피해 사실을 낱낱이 듣고 나서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가짜 고은’을 잡아들여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은은 종로경찰서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그 여성이 ‘가짜 고은’을 만나기로 한 종로3가의 ‘백궁’ 다방에 사복형사 두 사람과 함께 미리 가서 기다렸다. 마침내 ‘가짜 고은’이 나타나 그 여성이 혼자 앉아 있는 테이블에 다가가 앉으려는 순간 두 형사가 그를 덮쳤다.

고은은 경찰서에 고발장을 제출하러 갔다가 구속된 ‘가짜 고은’을 만나 그의 하소연을 들었다. 처음에는 고은이 부러워서, 고은처럼 되고 싶어서 고은 행세를 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한결같이 속아넘어가 주자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한 생계의 방편이 돼버렸다는 것. 게다가 고은의 이름으로 대학 영문학과 졸업반이던 여성과 관계를 가진 것이 결혼으로 이어져 이제 자기가 감옥살이를 하게 되면 어머니와 아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나타난 ‘가짜 고은’의 아내도 ‘남편을 새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바람에 고은은 고발장을 찢어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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