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산업기반의 붕괴에 대한 산업현장의 불안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극심한 내수.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이 공장 돌리기를 포기, 생산과 재고가 동시에 감소하면서 일부 품목은 제품 부족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 무역금융 마비현상이 지속되면서 알루미늄과 동광석.아연괴 등 비철금속과 일부 원유.석유제품 등은 원자재 재고가 적정수준의 60~70%대에 머물러 앞으로 산업활동이 더욱 위축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와 경제전문가들은 "투자.생산 위축의 단계를 넘어 생산기반이 무너지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며 "연말께 가면 일부 품목은 물건이 모자라 값이 오를 가능성도 있고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한상공회의소는 5일 정부에 수입원자재에 대한 부가세 징수방안 개선, 원자재 수입관세율 인하, 자본재산업 근로자 소득공제 확대 등 업계의 의견을 모아 생산진작을 위한 지원책을 요청했다.
◇상품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 = 재고감소의 영향이 가장 가시화된 품목은 의류. LG.에스에스.코오롱 등 대형 의류업체는 물론 중소업체들은 그동안 현금 확보를 위해 헐값에 물건을 대량판매한 반면 생산은 30~50% 줄여 재고가 급격히 줄었다.
이에 따라 최근 백화점 등에서는 가을.겨울 행사용 제품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추세라면 올 연말부터 옷값이 오르고 내년에는 품귀 현상도 생길 수 있다" 고 전망했다.
현금 확보를 위해 재고 처분에 나섰던 가전업계도 TV.냉장고.세탁기 등의 재고가 대부분 적정수준을 밑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돈이 급해 헐값에 판 덕에 재고는 처분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팔 수 있는 물건이 없어 현금확보가 걱정" 이라고 말했다.
또 H - 빔.중대형 승용차 등은 재고가 쌓여 고전하는 반면 철근.경승용차 등 수요가 많은 품목은 적정재고도 확보하지 못하는 '재고 불균형 현상' 도 보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종언 산업실장은 "최근 생산 감소가 수요 위축 속도를 앞지르면서 완제품 재고가 적정수준을 밑도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며 "원자재 수입이 줄어 정상적으로 공장이 가동될 수 없는 것도 한 원인" 이라고 지적했다.
◇끝없이 추락하는 가동률 = 지난해 80% 수준이던 가동률이 올 1월 67.8%, 6월에는 66.5%로 낮아졌다. 자동차의 경우 43%에 불과하다. 가동률 저하는 인력 정리, 유휴설비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속제품 업체 J사의 경우 지난해 가을 6백80명이던 근로자가 현재는 1백85명으로 줄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가동률 저하에 따른 유휴설비 규모가 현재 10조원 (부도분 제외) 을 웃돌고 있다고 추산했다.
◇원자재도 달린다 = 원유.석유제품의 경우 7월말 현재 원자재 재고는 46일분으로 적정재고 58일분을 밑돌고 있다.
고철.알루미늄괴.동광석 등도 적정재고의 60~90%대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일론.폴리에스테르 등 합성섬유의 경우 올초 대거 밀어내기 수출을 한 반면 원자재는 제대로 들여오지 못해 공장가동률이 50~70%대에 머물면서 재고가 바닥난 상태. 한 화섬업체 관계자는 "지금은 물건만 있으면 수출할 수 있다" 면서 "통상 비수기인 하반기에 제품을 만들어놓고 다음해 상반기에 팔아왔는데 요즘은 원자재가 없어 일부 라인을 세워두고 있다" 고 울상을 지었다.
◇대책은 없나 = 상공회의소는 생산기반 붕괴를 막기 위해 ▶시설투자 세액공제 적용기한을 2000년 이후로 연장하고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산업기술 개발자금 등의 지원규모를 확대하고 ▶수출용 수입원자재에 대한 부가가치세도 관세와 같이 납부를 유예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전민규 연구위원은 "산업기반 붕괴는 고용불안→경제성장률 하락과 이에 따른 대외신인도 추락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며 "금융 구조조정이 빨리 끝나 무역금융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내수진작책 등이 나와야 한다" 고 주장했다.
양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