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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산업기반 붕괴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제조업 산업기반의 붕괴에 대한 산업현장의 불안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극심한 내수.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이 공장 돌리기를 포기, 생산과 재고가 동시에 감소하면서 일부 품목은 제품 부족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 무역금융 마비현상이 지속되면서 알루미늄과 동광석.아연괴 등 비철금속과 일부 원유.석유제품 등은 원자재 재고가 적정수준의 60~70%대에 머물러 앞으로 산업활동이 더욱 위축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와 경제전문가들은 "투자.생산 위축의 단계를 넘어 생산기반이 무너지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며 "연말께 가면 일부 품목은 물건이 모자라 값이 오를 가능성도 있고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한상공회의소는 5일 정부에 수입원자재에 대한 부가세 징수방안 개선, 원자재 수입관세율 인하, 자본재산업 근로자 소득공제 확대 등 업계의 의견을 모아 생산진작을 위한 지원책을 요청했다.

◇상품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 = 재고감소의 영향이 가장 가시화된 품목은 의류. LG.에스에스.코오롱 등 대형 의류업체는 물론 중소업체들은 그동안 현금 확보를 위해 헐값에 물건을 대량판매한 반면 생산은 30~50% 줄여 재고가 급격히 줄었다.

이에 따라 최근 백화점 등에서는 가을.겨울 행사용 제품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추세라면 올 연말부터 옷값이 오르고 내년에는 품귀 현상도 생길 수 있다" 고 전망했다.

현금 확보를 위해 재고 처분에 나섰던 가전업계도 TV.냉장고.세탁기 등의 재고가 대부분 적정수준을 밑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돈이 급해 헐값에 판 덕에 재고는 처분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팔 수 있는 물건이 없어 현금확보가 걱정" 이라고 말했다.

또 H - 빔.중대형 승용차 등은 재고가 쌓여 고전하는 반면 철근.경승용차 등 수요가 많은 품목은 적정재고도 확보하지 못하는 '재고 불균형 현상' 도 보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종언 산업실장은 "최근 생산 감소가 수요 위축 속도를 앞지르면서 완제품 재고가 적정수준을 밑도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며 "원자재 수입이 줄어 정상적으로 공장이 가동될 수 없는 것도 한 원인" 이라고 지적했다.

◇끝없이 추락하는 가동률 = 지난해 80% 수준이던 가동률이 올 1월 67.8%, 6월에는 66.5%로 낮아졌다. 자동차의 경우 43%에 불과하다. 가동률 저하는 인력 정리, 유휴설비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속제품 업체 J사의 경우 지난해 가을 6백80명이던 근로자가 현재는 1백85명으로 줄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가동률 저하에 따른 유휴설비 규모가 현재 10조원 (부도분 제외) 을 웃돌고 있다고 추산했다.

◇원자재도 달린다 = 원유.석유제품의 경우 7월말 현재 원자재 재고는 46일분으로 적정재고 58일분을 밑돌고 있다.

고철.알루미늄괴.동광석 등도 적정재고의 60~90%대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일론.폴리에스테르 등 합성섬유의 경우 올초 대거 밀어내기 수출을 한 반면 원자재는 제대로 들여오지 못해 공장가동률이 50~70%대에 머물면서 재고가 바닥난 상태. 한 화섬업체 관계자는 "지금은 물건만 있으면 수출할 수 있다" 면서 "통상 비수기인 하반기에 제품을 만들어놓고 다음해 상반기에 팔아왔는데 요즘은 원자재가 없어 일부 라인을 세워두고 있다" 고 울상을 지었다.

◇대책은 없나 = 상공회의소는 생산기반 붕괴를 막기 위해 ▶시설투자 세액공제 적용기한을 2000년 이후로 연장하고 ▶부품.소재산업에 대한 산업기술 개발자금 등의 지원규모를 확대하고 ▶수출용 수입원자재에 대한 부가가치세도 관세와 같이 납부를 유예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전민규 연구위원은 "산업기반 붕괴는 고용불안→경제성장률 하락과 이에 따른 대외신인도 추락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며 "금융 구조조정이 빨리 끝나 무역금융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내수진작책 등이 나와야 한다" 고 주장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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