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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민주주의 후퇴, 누구 책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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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한국은 2003년부터 올해까지 정치자유는 1점, 인권은 2점이다. 일본·이탈리아 등과 동점으로 ‘자유로운’ 나라 중에서도 상위 그룹에 속한다. 이 보고서는 각국의 민주주의 척도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권위 있는 평가서다. 국제사회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꽤 괜찮은 상태’라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민주당의 ‘민주주의 후퇴론’이 무색해진다. 특히 DJ 정권 말이던 2002년판 보고서엔 한국이 정치적 자유와 인권, 두 범주 모두 2점으로 나와 있다. 작은 차이이긴 하지만 정치적 자유는 그 시절보다 현재의 상태가 호전됐다고 평가한 것이다.

물론 대학교수·종교계·전교조까지 가세해 주장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공권력 남용, 집회·시위·표현의 자유 후퇴, 언론인 탄압 등의 내용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의 인권상황이 후퇴하고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고 발표해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앰네스티는 시위대가 폭행당하고, 광우병 문제를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 등 일부 언론인의 체포, 기소 등 구체적 사안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부분적 사안들이라 할 수 있다. 전체 상황을 종합적으로 아우른 내용이라고 하기 어렵고 반론도 만만찮다.

죽창까지 등장하는 살벌한 불법 폭력 시위를 방관해야 하는가. 왜곡 과장보도로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불러왔는데도 눈감아야 하는가. 공권력의 과잉대처로 인한 인권침해적 요소를 일부 인정하더라도 지금 상황을 고문과 무차별 폭력이 난무하던 군부정권 시절에 비유해 “독재정권”이라고 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현 정부는 공권력이 폭력 시위에 찔리고 얻어맞는 물렁정부요, 소수 야당에 발목 잡혀 아무것도 못하는 약체 정부라고 부르는 게 맞다.

그럼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말로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프리덤하우스의 평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비롯한 절차적 민주주의, 법에 의한 통치, 기본권 보장, 언론자유 등을 중점적으로 파악하여 이뤄지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기본 틀은 정착됐다는 평가일 뿐이다.

만약 민주주의의 작동기제 등 민주주의 운영 측면이나 실질적 진전 여부를 평가항목으로 포함시켰다면 한국의 지수는 훨씬 열악한 것으로 나타날 게 틀림없다. 특히 완전히 작동을 멈춘 우리의 국회의사당. 어휴~, 7점 만점은 떼놓은 당상일 게다. 지난해 말 전기톱과 해머가 등장한 난장판 국회를 보고 중국 네티즌들이 쏟아낸 비아냥들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저렇게 하는 게 민주주의인가?” “마오쩌둥의 인민민주전정(專政 : 독재) 만세” “한국은 민주(民主)가 아닌 민주(民猪 : 중국어론 발음이 같다. 돼지라는 뜻)주의다.” 프리덤하우스는 중국을 ‘자유가 보장되지 못한’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야권이 이런 측면에서 민주주의 후퇴론을 폈다면 그건 틀리지 않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심대한 위기임에 틀림없다. 1987년 6·29 선언으로 민주화는 달성됐는지 몰라도 지금까지 22년 동안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진전되지 않았다. 대의민주주의를 꾸려 가는 우리네 정치의 낙후성과 그에 따른 폐해는 언급하기도 지칠 지경이다. 중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책임에서 DJ와 민주당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6·29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 정치의 핵심 주체 중 한 축이었으며, 특히 지난 두 차례 정권에선 집권당이었다. 아무리 양보해도 공동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발전·육성시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민주주의 후퇴의 책임을 들어 정부 공격에 나서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있지만 속으론 골병 든 한국 민주주의, 그 병인(病因)은 무엇일까. 집권당은 물론 야당도 이를 고민하고 치유책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도 없다. 타임지 1월호엔 ‘아시아 민주주의’ 관련 기사에서 한국 등을 언급하며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는 성가시고 무능하거나 부패한 제도라는 개념이 팽배하다”고 썼다. 여야가 싸움만 하고 허송할 때가 아니다.

허남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