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심판불신이 낳은 난장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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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죽은 심판의 사회' . 프로야구 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공정한 판정' 을 상징하는 심판의 제복이 불신으로 물들고 있는 것이다.

2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LG와 쌍방울의 더블헤더 1차전. 7회말 LG 이종열의 타구가 페어냐 파울이냐를 놓고 쌍방울 코칭스태프와 심판들간에 항의와 퇴장명령, 욕설과 멱살잡이가 이어졌다.

볼썽 사나운 이들의 승강이는 팬들의 야유를 사기에 충분했다.

쌍방울은 "지난 19일 인천 현대전에서 오심 의혹이 짙은 판정을 내렸던 김준표 3루심이 이날도 감정을 앞세워 우리 팀에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 고 주장했다.

분명한 파울 타구를 페어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심판들은 "쌍방울이 피해의식에서 출발해 심판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거친 항의를 일삼고 있어 심판들의 명예가 실추되고 야구판의 질서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고 반박했다.

최근 들어 심판 판정과 결정에 대한 불복과 승강이가 부쩍 늘었다.

지난달 26일 쌍방울 김원형의 빈볼 시비, 같은달 11일 쌍방울 김성근감독의 수원구장 마운드 높이 어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판정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이를 문제삼는 방법도 깔끔하지 못했다.

문제의 본질은 어느 쪽이 정당하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출발부터 서로를 불신하며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코칭스태프는 심판을 못믿고 있으며, 심판은 감독.코치들이 승리만을 위해 심판의 존재가치를 무시한다고 믿고 있다.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으로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심판이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우선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는 엘리트의식을 가진 심판이 공정하고 감정이 배제된 판정을 내릴 때만 가능하다.

감독.선수들도 심판 판정 하나하나에 흥분하지 말고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심판이 마음에 안든다고 야구판을 깰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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