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LL 유탄' 맞은 군 정보 수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지난해 10월 국군의 날 행사 때 노무현 대통령이 사열하는 무개차에 제병지휘관으로 선탑한 박승춘 국방 정보본부장(左). 이때 조영길 국방부 장관(뒤쪽)이 노 대통령에게 우산을 받쳐줘 품위 논란을 빚었다. [중앙포토]

박승춘 국방정보본부장(57.육군 중장)이 26일 자진 전역을 신청함에 따라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관련한 '보고 누락'사태가 일단락됐다. 군내에는 박 본부장의 잘못이 중하긴 하지만 전역까지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북한 함정의 NLL 침범으로 벌어진 사태가 어떻게 북한군에 대한 정보 수집과 분석을 총지휘하는 정보본부장의 30년 군생활 청산으로 귀결될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더구나 박 본부장이 언론에 유출한 자료는 비밀이 아니라 평문으로 최종 판정났다. 따라서 단순히 유출한 행위로만 보직 해임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군사보안 규칙과 국방공보 규정, 군인복무 규율 위반을 적용해도 감봉 이상의 징계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보다는 '보고 누락'에 대한 대통령의 진상조사가 내려진 상황에서 독단적으로 정보를 유출해 군 통수권에 반항하는 듯한 상황을 조성한 대목에 무게가 실린다. 국방부 수뇌부는 박 본부장의 행위를 '항명' 쪽으로 해석했을 수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이날 "국방부는 청와대에 박 본부장을 해임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 것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국방부 사이의 기류를 감지한 박 본부장이 먼저 자진 전역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박 본부장이 전격적으로 전역 의사를 표시하면서 국방부 인사위원회는 갑자기 취소됐다. 국방부로서도 군의 사기 저하 등 복합적인 문제를 고려해 강제적으로 그의 옷을 벗기는 모양새를 취하기 싫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 본부장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전체에 누를 끼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만 말했다.

군 일각에선 그의 전역에 대해 "군인답게 깨끗하게 잘했다"는 말도 나온다. 정보본부 관계자는 "박 본부장이 '소신에 따라 자료를 유출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본부장은 북한 경비정의 송신 사실이 합동참모본부에 보고되지 않은 책임 문제가 나오자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 상황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경비정이 기만 송신을 했기 때문에 해군 함정이 경고사격을 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16일 북한의 전화통지문을 브리핑하면서 북한이 송신 시간을 허위로 기재한 부분은 밝히지 않고 우리 군에 잘못이 있는 것처럼 발표해 이를 바로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 북한정보 분석에만 30여년 바쳐

◆ 박승춘 정보본부장은=육사 27기로 1971년 임관 이후 30여년간 북한 정보 분석에 전념해온 군내 최고 정보통이다. 위관과 영관 시절 전방부대와 정보본부를 번갈아 근무하면서 전문성을 쌓았다. 북한 정보를 담당하는 정보본부 북한 차장.부장과 일선 사단장.군단장 등 지휘관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보 장교로는 매우 드문 경우다. 정보본부는 지난 5월 취임한 박 중장이 2002년 서해교전 이후 사기가 떨어진 조직을 추슬러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임기를 3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육사 생도 시절 럭비 선수로 활약했다. 장군으로 진급한 뒤에도 상계동 32평짜리 군인아파트에 살았다. 정보본부 관계자는 "박 본부장은 연줄도 없이 오로지 일에만 몰두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