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일본 얕보는 미국…일본 뒤쫓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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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차기 총리감인 일본 자민당총재 선출을 보도하는 미 언론의 자세가 냉랭하다.

"민의 (民意) 와 동떨어진 선거" "구태의연한 파벌정치의 산물" 이 주요 사설 제목이다.

아시아 금융위기에 부닥쳐 일본에 자못 기대했던 미국은 재정.금융개혁의 시기를 놓치고 방향조차 제대로 못잡은 일본 정부에 적잖이 실망했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서 파벌중심 인사와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자민당 실정 (失政) 의 한 자락을 차지했던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외상이 부상한 데 대해 미국이 답답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이 간여할 일도 아니고, 현재로선 별 대안도 없다곤 하지만. '질긴 관료주의' '지도력 모자란 정치인들' '거대한 경제를 감당 못하는 공룡' . 언제부턴가 워싱턴 인사들 사이에 오가던 일본관련 비아냥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다시 불거졌다.

워싱턴에만 20여개 로비.컨설팅회사를 고용해 연간 수백만달러를 쏟아붓는 일본으로선 억울한 일이다.

그나마 깔끔하고 정중한 일본인들의 국민성 덕에 무시당하진 않지만 경제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기엔 아직 멀었다는 것이 일본을 아는 미국인들의 안타까움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서구식 정당정치와는 한없이 거리가 있는 일본정치와 아시아 경제위기 해결에 한몫 거들기를 포기한 일본의 경제정책에 편들 미국인들은 많지 않다.

하기야 중국 얼싸안기에 나선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미.일 동맹관계를 해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들조차 일본이 자기 몫 챙기기에서 속히 벗어나 경제규모에 걸맞게 행동해 주길 촉구한다.

이처럼 진부한 일본 정치.경제판에 식상한 미국인들은 다소 무리수를 두면서도 밀어붙이는 한국 정부의 개혁에 점수를 준다.

하지만 이들의 평가를 흔쾌히 반길 수 없는 까닭은 한국 정계와 관료사회의 되풀이되는 구태가 바로 일본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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