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이 추하다? 그러는 우리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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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못나도 온힘 다해 산다

호야, 더 샴 2008.5, 62x92㎝, 캔버스에 구타와 아크릴, 2008.

자칫 전시장을 뛰쳐 나가고 싶어질 수도 있다. 화폭의 주인공은 동해 물고기 ‘삼식이’. 피부병을 앓는 듯 흉악한 비늘에서 비린내가 훅 끼쳐올 것 같다. 눈은 있는 듯 없는 듯 하고, 가시와 상처는 덕지덕지 몸을 덮고 있다. 크기도 커서, 추함을 숨길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추함을 견디지 못하고 전시장을 정말 벗어난다면, 뒤통수에 작가의 한마디가 와서 꽂힐 것이다. “그러는 너희는 얼마나 잘 생겨서.”

이 못생긴 물고기를 못생긴대로 그린 화가는 이상원(72)씨. 자동차 바퀴 자국, 내팽겨진 마대 등을 사진처럼 정밀하게 그려왔던 작가는 삼식이에게 또한 조금의 미화(美化)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씨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모두가 무시하는 풍조를 참을 수가 없어 ‘삼식이’ 연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2년 전 한 시장에서 상인과 손님이 모여 삼식이의 추함을 구경하던 장면을 본 후였다. “자기들은 얼마나 아름답기에 못생김에 대해 천대를 일삼느냐”는 생각이 든 그는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가져야할 ‘감정’이 저절로 깔렸다”고 한다.

이씨는 그길로 삼식이 몇 마리를 사서 작업실로 가지고 왔다. 물통에 담긴 삼식이는 그 후로 20일을 살아서 버텼다. “모두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놈이 그렇게 질길 수가 없더라. 마음이 애잔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온 힘을 다해 사는 삶, 작가가 추(醜)를 들춰 발견한 것이다.

#2.괴물시대에 금기를 깬다

작가 한효석(38)씨는 배가 갈린 돼지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붙인 모양의 작품을 만들어 전시장 바닥에 내팽개쳤다. 또 다른 회화 작품에서는 사람 얼굴의 피부를 벗겨 시뻘건 모습을 버젓이 그려놨다. 그러고도 한씨는 “충격 요법을 위한 작품들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효석, 감추어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0, 248×178㎝, 캔버스에 유채, 2008~2009(左). 이상원, 동해, 41x63㎝, 한지에 먹과 유채, 2007. [서울시립미술관, 갤러리상 제공]


이 끔찍함의 근원은 한씨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경기도 평택의 토박이. 혼혈인 친구들이 많았다. 사람들 놀림감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는 ‘피부 한꺼풀만 벗겨도 다 똑같다’는 일침을 날리는 것이다. 가축을 키워 팔던 부모님을 도와 기형의 동물들을 땅에 묻었던 기억 또한 그는 작품의 소재로 썼다. 사람 머리를 한 돼지는 그렇게 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한씨 등 21명의 한국 작가가 참여한 ‘괴물시대’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 즐비하다. 장지아(36)씨는 자신의 소변을 모아 우아한 나무 모양으로 매달아놨다. 김혜숙(55)씨가 커다랗게 만들어 놓은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그 소재는 말 가죽이다. 김씨는 코를 찌르는 가죽 냄새의 불쾌함을 그대로 살려놓았다. 작가가 아름다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냄새다.

이상원씨는 “못생긴 놈 그림이 되려 질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기쁘다. 앞으로도 버려진 것, 사라질 물건을 쫓아다니며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괴물시대’전의 기획자 양혜숙씨는 “일반적인 것에서 비켜가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 부조리·금기·광기를 마음껏 건드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인기가 많은 ‘예쁜 미술’을 버리고, 앞으로도 못생기고 추악한 것들을 거둘 듯하다.

김호정 기자

◆이상원 개인전 ‘동해’=8월 12일까지 서울 팔판동 갤러리 상

◆‘괴물시대’=8월 3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1층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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