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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화당만 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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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도 정당 간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특히 요즘은 정권을 빼앗긴 공화당의 독설이 심하다.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자기들은 떵떵거리며 살면서 입으론 서민을 위하는 척한다”며 ‘리무진 데모크래트(Limousine Democrat)’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서로를 못 믿고 경멸하는 건 한국 정치권이나 매한가지다.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이 하원의원 시절 꼴 보기 싫은 정적에게 썩은 생선을 배달했다는 건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미국 의회는 한국과 달리 제대로 굴러간다. 정책 차이는 한국 정당들보다 더 큰 데도 법안은 적당한 때 다수결을 통해 통과된다. 고위직에 대한 인준도 그 정도 혼쭐 냈으면 됐다 싶을 때 처리된다. 왜 그런가? 가장 큰 이유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두 나라의 정치·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면에 숨은 오바마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노력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의 백악관에는 구석구석에 의회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비서실장 자리만 아니었다면 연방 하원의 민주당 원내대표 0순위였던 4선 경력의 이매뉴얼이 첫째다. 선임 보좌관으로 오바마 집무실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는 피트 루즈의 별명은 ‘101번째 상원의원’(미 상원 의석수는 100석)이다. 1971년 의회에 둥지를 튼 루즈는 의원 오바마와 일하기 전 오랫동안 톰 대슐 전 상원 원내대표의 보좌관이었다. 백악관 2층에 이매뉴얼만큼 큰 사무실을 차지한 변호사 출신의 그레그 크레이그 고문은 에드워드 케네디(9선) 상원의원의 자문역을 지냈다. 피터 오재그 백악관 예산국장은 의회 예산국장 출신이다. 오바마는 내각에도 민주·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의회 출신을 대거 기용했다. 힐러리 클린턴을 필두로 상·하원 의원 출신이 6명이나 된다. 전략적으로 대(對)의회 교섭력을 정권 초기 내각 인선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백악관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은 “오바마의 참모들은 수시로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정책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오바마는 주로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한다. ‘나는 공화당만 맡는다’는 게 그의 각오”라고 전했다.

얼핏 보기엔 30여 년 만에 최대 의석으로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오바마가 쉽게 의회를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밑에선 의회 움직임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들이 불철주야 의원들을 접촉하고 설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맨 앞에 오바마가 있다.

오바마가 그런 고된 역할을 자처한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훗날 의회가 아닌 ‘오바마 정부’만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