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운은 우선 청각(聽覺)에 대응하는 말이다. 동양에서는 흔히 여음(餘音)이라고 불렸다. 가난했지만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가창력이 빼어났던 어느 한 여성의 이야기에서 이 단어는 비롯했다.
춘추전국시대 한(韓)나라의 여인 한아(韓娥)가 제(齊)나라에 갔을 때 이야기다. 가난했던 그는 제나라의 수도 옹문에서 노래를 부르며 살아갔다. 그가 묵었던 여관 주인이 그녀를 욕보이자 흐느끼며 내뱉었던 울음소리에도 주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그 목소리에는 호소력이 담겼던 모양이다.
그가 정색을 하고 부른 노래는 며칠 동안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사람들은 한아가 노래를 부른 뒤에 최소 3일 동안은 무대 위의 대들보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른바 여운이 대들보를 휘감고 돌았다는 뜻의 ‘여음요량(餘音繞梁)’이라는 고사성어에 얽힌 일화다.
설마 그럴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공감대는 청각으로 전해지는 소리에서도 충분히 넓혀진다. 공자(孔子)가 평소 동경했던 주(周)나라의 음악인 소악(韶樂)을 들은 뒤 “석 달 동안 고기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三月不知肉味)”고 한 얘기가 좋은 예다.
거문고의 고수 백아(伯牙)와 그 음악에 공명했던 종자기(鍾子期)도 소리로 함께 통하는 ‘지음(知音)’의 경계에 닿은 사람들이다. 백아가 거문고로 자연을 노래하면 종자기는 바로 “우뚝한 산과 도도히 흘러내리는 물(高山流水)을 느낀다”고 화답할 정도로 둘은 소리와 그 울림으로 통했다.
일세를 풍미한 가객(歌客),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으로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많은 비행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리의 여운으로 남았다. 청아한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한 ‘아이윌 비 데어(I’ll be there)’는 새삼 지구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라지면서 어떤 여운을 남길 수 있을까. 제 이름 걸고 버젓이 활동하는 이 시대의 공인(公人)들이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