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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경찰이 신창원을 잡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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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탈옥수 신창원 (申昌源) 이 16일 서울 강남에서 검문 도중 달아난 후 2주일째 오리무중이다.

뉴스시간마다 등장하고 현상금 5천만원이 걸린데다 방방곡곡을 수배사진으로 덮다시피 했지만 종적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창원의 탈주를 흥미로워 한다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국민에게 흥미로움 (?) 을 주는 것은 신창원이 아니라 바로 경찰의 무능이나 어리석음 또는 바보스러움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얼마나 무능하고 못났으면 총기를 든 다수의 경찰관이 맨손의 탈옥수 하나를 다섯번씩이나 놓친단 말인가.

명색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면서 1년 반 넘게 번갈아 망신만 당하며 쩔쩔매는 꼴이란 서민들이 오랜만에 맛보는 씁쓸하면서도 색다른 흥미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 관련 징계 경찰관이 30여명이라니 '신창원이 경찰 인사권을 쥐고 있다' 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서울 수서경찰서장이 부임 14일만에 경질된 것이나 申을 놓친 嚴경장과 吳순경이 당일로 서둘러 징계위에 회부된 것은 진짜 웃기는 일이다.

파출소에 근무하는 두 경찰관이 오전 4시쯤 주택가 골목에 서 있는 승용차를 수상히 여기고 번호판 확인작업을 통해 도난차량임을 확인 검문했으므로 이들의 근무자세는 아주 성실했던 셈이다.

당시 이들이 적당히 순찰차량에서 잠이나 잤다면 아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니 이들의 징계는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근무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또 경찰 손으로 신창원을 찾아낸 것도 그들이 처음이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흉악범을 몸을 물어뜯기고 발길에 차여가며 다른 곳으로 확실하게 쫓아버렸다면 지역 주민으로서는 여간 고맙고 대견스런 일이 아니다.

전국의 파출소 근무자들이 두 경찰관만큼만 근무한다면 申은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할 일이 아닌가.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의 잘못이 고의가 아닌 과실이라는 점이다.

유흥업소에서 떡값 거두는 경찰이나 법규위반 운전자를 등치는 교통경찰보다 훨씬 양질인 것이다.

그런데도 장관을 비롯한 간부들이 이들에게 불호령을 내리기 바쁘고 징계만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신들의 보신 (保身) 을 위해 부하를 희생양으로 삼아 여론의 비난을 피해보려는 의도는 없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두 경관의 총기 사용 미숙이나 검문 소홀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한 최고 간부들의 책임이라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냄비 여론이 문책을 주장하더라도 조직 전체의 사기를 위해 부하를 감싸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지휘관의 올바른 자세다.

한 경찰간부는 잘 하려다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책임을 묻지 말아야 복지부동.무사안일을 방지할 수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벌써 경찰 내부에 '애써 일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는 자조적인 분위기도 있다니 또 다른 걱정거리다.

도로를 가로막는 경찰의 '신창원 찾기' 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통행인에게 불편이나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긴 했지만 지켜질 리가 없다. 땡볕 승용차 줄세우기는 물론이고 선글라스나 모자 벗기기는 예사며 트렁크를 열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경찰서장이 "경찰서끼리 철저한 검문을 통해 타서 (他署) 관할지역으로 쫓아내기 경쟁을 하는 중" 이라고 푸념할 정도다.

신창원 검거를 위해 이제 경찰과 국민이 업무 분담을 해야 할 때다.

물밑에 숨은 申을 찾아내는 것은 국민의 몫이고 경찰은 붙잡기만 제대로 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경찰 수사 방향은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검문이 아니라 탐문으로 전환돼야 한다. 제보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이 경찰에 협조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전.충남지역 경찰은 최근 뺑소니사고가 나면 즉시 경찰서장 명의로 '목격자를 찾습니다' 라는 현수막을 사고 현장에 붙여준다.

그동안 피해자 가족이 '목마른 사람 우물 파는' 격으로 붙여오던 것을 경찰 부담으로 제도개선했더니 주민도 좋아하고 효과도 훨씬 크더라는 것이다.

또 전국 경찰이 다음달부터 명찰을 달기로 한 것도 주민 편의를 위해 채택된 아이디어들이다.

경찰이 국민편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신창원 검거는 시간 문제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때까지 경찰이 몇번이나 더 놓쳐 또 놀림감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권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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