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박원숙의 연기 3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초라한 주연보다 화려한 조연이 좋다. 주연이 아니라서 속상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

70년 MBC 공채탤런트 2기로 출발해 연기생활 28년째를 맞는 탤런트 박원숙의 연기관이다.

과연 그는 한번 확 피었다 지는 나팔꽃같은 수많은 주연들보다 잡초같은 생명력을 유지하며 대표급 조연으로 뿌리를 내렸다.

'조역인생' 의 출발은 74년 MBC드라마 '수선화' 부터. 주인공 김자옥의 고민 해결사인 성격좋은 간호사 역을 맡은 이후로 줄곧 노처녀나 독신녀, 유한마담, 술집여자 등이 단골배역이었다.

3백여 편 넘게 찍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청자들은 86년부터 5년간 매주 일요일 아침에 찾아왔던 '순돌이 엄마' 를 아직까지 입에 올린다.

순돌이 아빠 (임현식 분)에게 바가지를 긁어대며 순돌이를 들들 볶는 억척스러운 아줌마지만 어딘지 미워할 수 없는 인간적인 캐릭터. 이는 그에게 88년 KBS최우수연기상과 89년 백상예술대상 TV연기상을 안겨줬던 KBS - 1TV 대하드라마 '토지' 의 임이네로 이어졌다.

그는 여기서 탐욕스럽고 질투심많고 천박한 '악귀같은' 모습, 동네 아낙네들과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진흙탕에서 뒹구는 그악스런 모습으로 열연을 했고 스스로도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는다.

90년대 들어 '푼수끼' 를 가미하면서 박원숙은 화려하게 변신한다.

그 신호탄이 지난해 방영된 '별은 내 가슴에' (MBC) .못되기 짝이 없지만 푼수같은 행동으로 조미령.박철과 함께 매회 폭소를 자아냈던 속물 송여사 역이었다.

여기에 뒤를 이은 히트작 '그대 그리고 나' 의 홍교수 역은 '실제 박원숙이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닭살돋는' 실감연기였다.

그는 실제로 캡틴 박 (최불암 분) 이 민규엄마 (이경진 분) 와 홍교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자 대본 연습을 하다 말고 "난 정말 남자복도 지지리 없나봐" 라며 한탄을 할 정도로 몰입했다고 한다.

최불암씨는 박씨의 책에서 "박원숙씨는 드라마 속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연기자다. 자신을 1백% 던지다 못해 영혼까지 바꿔버리는 배우" 라고 평가했다.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