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그린수기]12.투포환으로 다져진 허리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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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US여자오픈 우승 후 전용비행기를 타보지 않나, 미국 대통령이 나와 함께 골프를 치고 싶어하지를 않나…. 정말 꿈만 같다.

가는 곳마다 팬들이 몰려들고 연일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으로 매니저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거절하기에 지친 매니저는 아예 핸드폰을 끄고 다닐 정도다.

내가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갤러리들이 나의 샷을 지켜보며 숨을 죽일 때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바로 무거운 쇳덩이 (포환) 를 들고 막 던질 폼으로 서있는 나의 어릴 때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나는 포환던지기 선수가 될 뻔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육상과 포환던지기 선수로 활약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대전시민체육대회 4백m 허들에서 우승도 했다.

선생님은 내가 순발력과 탄력이 뛰어나 확실한 올림픽 금메달감이라고 늘 칭찬하셨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포환던지기 경험은 나의 골프에 많은 도움이 됐다.

포환던지기의 원리는 골프와 비슷하다.

순발력과 탄력을 많이 요구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허리를 비틀었다가 다시 풀면서 던지는 힘도 그렇다.

사람들은 내가 뒤늦게 골프에 입문해 짧은 기간에 급격히 성장했다고 하는데 포환던지기가 나의 골프인생에 의미없이 끼어든 것은 분명 아닌 듯하다.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구옥희 선배나 김애숙 선배도 포환던지기 선수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골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이들에게 골프를 시키는 집안은 그리 흔치 않았다. 아주 돈이 많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골프에 대한 인식이 훨씬 좋지 못했다.

어린 내가 골프채를 들고 왔다갔다 하는 걸 보고 주위 사람들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하며 비아냥거렸다.

우리집 형편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분이 계시다. 아버지의 선배인 서상기씨 (프로골퍼 서종현.종철 오빠의 아버지) 다.

아버지는 서상기씨와 종종 내기골프를 치셨다.

아버지가 돈을 잃으면 나는 서상기씨에게 골프를 치자고 제의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아버지가 잃은 돈을 고스란히 되돌려받았다.

나에게 골프를 시켜보라고 권유한 사람도 바로 서상기씨다.

아이답지 않은 승부욕과 집념이 있어 보인다며. 여기에 아버지의 야심이 덧붙여져 아버지는 나를 본격적으로 골프로 밀어붙였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나를 포환던지기 선수로 키우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나를 두고 아버지와 학교측은 열심히 줄다리기를 했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포환던지기, 집에 오면 골프, 나는 한동안 이렇게 이중생활을 했다.

결국 아버지와 학교는 타협을 했다.

1년 안에 골프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다시 포환던지기선수로 복귀한다는 조건이었다. 나는 필드에서 뭔가 보여줘야 했다. 나와 아버지는 죽기살기로 골프에 매달렸다. 중학교 2학년 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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