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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열리는 '무차대회'법주 백양사 서옹방장 선문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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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불교 조계종 고불총림 (古佛叢林) 백양사가 이 여름 특별한 행사를 준비중이다. 오는 8월18~22일 국제적인 공개 선문답을 벌이는 무차대회 (無遮大會) 를 연다고 한다.

예비대회 (7월16~18일) 까지 가진 고불총림의 이같은 법거량 (法擧揚) 은 한국 불교 조사선 (祖師禪) 의 정체성을 새삼 확립하고 그 선풍을 널리 진작시키려는 것으로 불교계 안팎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다. 대회 법주인 고불총림 서옹 (西翁.86) 방장을 미리 만나 선문답을 해봤다.

문 : 고불총림이라고 해서 찾아와 봤더니 옛부처는 안보이고 금부처만 보입니다. 고불은 어디 있습니까.

답 : 여름철에는 오미자차가 좋네. 오미자차나 한잔 마시게.

문 : (차를 마시고 나서) 아직도 고불이 안보이는 데요.

답 : 고불이 이미 자네 앞을 지나간지 오래야 (古佛過去久) . 註 : '고불' 은 모든 존재의 근원인 진여당체 (眞如當體) 로서의 불법 진리를 상징한다.

서옹방장의 말후구 (末后句) "고불과거구" 는 진리란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등의 평범한 일상사 속에 내재한다는 얘기다. 이른바 도는 없는 곳이 없으며, 일상생활이 바로 진리라는 평상심시도 (平常心是道) 다.

도란 이처럼 멀리 있는 것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기에 도의 발견과 실천은 세수하다 코만지기처럼 쉽다는게 선불교의 진리관이고 불법 (佛法) 실천구조다.참고로 중국 선림의 6조 혜능.마조도일.조주종심.위산영우.중봉명본 선사 등이 각각 생불 (生佛) 을 뜻하는 조계, 강서, 조주, 위산, 강남고불로 칭송된 바 있다.

문 : 지렁이를 두 토막으로 끊으면 (구蚓兩斷) 양쪽이 다 움직이는 데 이때 불성 (佛性) 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답 : 고런 소리 허면 몽둥이가 30대야 (三十棒) .

문 : 그래도 움직이는데요.

답 : 4대 (大)가 아직 흩어지지 않았느니라.

註 : '30방' 은 두 토막난 지렁이의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을 구분하는 분별심을 박살내기 위한 충격요법이다. 인간의 모든 번뇌망상과 진리의 왜곡은 사물을 고저.장단.귀천으로 대립시켜 나누는 2분법적인 사유체계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선은 진리에 입각한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분별심을 버리고 세상사를 뿌리가 같은 하나로 보라고 가르친다.

'잘라진 지렁이' 의 움직임은 물질계를 구성하는 4대 요소인 지 (地).수 (水).화 (火).풍 (風) 이 아직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생멸이란 이 4대가 모였다가 (生) 흩어지는 (滅) 계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체 존재의 본체인 불성, 자성 (自性) 으로서의 4대는 불생불멸이고 부증불감 (不增不減) 이다.

문 : 뱀이 개구리를 잡아 삼키려 할 때 (蛇呑蛤마) 개구리를 구해줘야 합니까, 그냥 내버려 둬야 합니까.

답 : 구해주면 두 눈이 멀어버릴 것이고 그냥 두면 형체도, 그림자도 안보일 것이다.

註 : 구해주면 대도 (大道) 를 보지 못하고 구해주지 않으면 도를 구현하지 못하는 난감한 지경인 '사탄합마' 는 영혼까지를 완전히 비워낸 이사무애 (理事無碍) 의 경지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 구해주는 일은 '이' (정신.이상) 를 버리고 '사' (육체.현실)에 떨어지는 것으로 선학에서는 이런 경우를 정중편 (正中偏) 이라 한다.

안구해주면 '사' 를 버리고 '이' 에만 매달리는 편중정 (偏中正) 이다. 편중정에 집착하는 것은 값싼 니힐리즘이다. 공리심이나 죄의식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공무 (空無) 의 경지에서는 이사 어디에도 걸림없는 자유의지를 따라 구해줄 수도, 그냥 있을 수도 있다.

문 : 스님께서는 일본 임제대학에 유학도 하셨고 일생을 한국 선종 (조계종) 의 법원 (法源) 인 임제선풍을 진작하는데 바치셨는데 임제선의 핵심인 진인 (眞人) 이란 어떤 것입니까.

답 : 거짓말 않는 사람이 '참사람' 이지. 거짓이 없으면 양심에 부끄러울게 없고, 양심이 깨끗하면 절대 자유로울 수 있는 거야. 정치인.경제인.관리들 정말 거짓말 너무 많이 하더군. 종교인들까지도 그래. 경제의 어려움도 문제이긴 하지만 '참사람운동' 이 더 시급해. 선에서는 무의식까지도 투과 (透過) , 흔들림없는 자기 주체성을 확립한 절대 자유인을 진인이라 하지. 어쨌든 진인이 될려면 우선 거짓이 없어야 해.

문 : 요즈음 찜통 더위입니다. 스님, 이제 제발 열반 다음 소식을 좀 일러 주십시요.

답 : 바지 가랑이를 걷어 올려 더위를 잊는다 (襤거遁暑) .

註 : 인간의 삶은 어차피 더위와 추위, 번뇌와 망상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저쪽에서 깨달았더라도 이쪽으로 돌아와야 하는 도인의 삶은 더위.추위와 같은 일체 현성 (現成) 을 평등 속의 차별, 본체속의 현상으로 수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웃을 일이 있으면 웃고, 울 일이 있으면 울면서 살 수 있다.

더우면 옷자락을 걷어올려 바람을 쐬는, 모두가 다 익히 아는 바 '람거둔서' 의 피서. 공의 세계를 철견한 후 도법 (道法) 을 버리지 않고 범부의 일을 나타내면서 살고 있는 서옹선사의 임운자재 (任運自在) 한 일상을 그림처럼 펼쳐 보여주는 말후구다.

문 : 들어오다 보니 칡덩굴이 소나무를 휘감고 올라가 있던데요. 소나무가 쓰러지면 칡덩굴은 어떻게 됩니까. 답 : 허허, 대낮에 무슨 잠꼬대야. 문 : 유와 무의 관계를 알아보려고 만오천원 들여 새마을 열차 타고 서울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답 : 시자야, 이사람 서울까지 갈 노자 좀 마련해 주어라.

註 : 유무의 대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대체 어디에다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할까. '평온' 을 상징하는 서옹방장의 한바탕 웃음이 바로 그 해답이다. 인생을 노래하며 지나가는 여정처럼 즐기고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삼라만상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서옹선사의 너털웃음 '허허' 는 내면적 선체험이 논리적 설명을 요구받았을 때 그 설명을 대신하는 행동언어다.

"스님, 그만 갑니다. 진중 (珍重 : 안녕히 계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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