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EU FTA를 한·미 FTA 성사 지렛대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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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조만간 최종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과 EU의 협상대표단은 이미 지난 3월 주요 쟁점에 관해 잠정 합의에 도달했고, 곧 몇 가지 남은 쟁점을 두고 막판 실무협상을 벌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협상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경우 G8 정상회담 참석차 유럽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과 하반기 EU 의장국인 스웨덴의 레인펠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는 10일께 협상 타결 선언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년에 걸친 마라톤 협상이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한·EU FTA 협상이 타결된다면 여러 가지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장 한국과 EU 간의 교역이 늘어나 두 지역의 경제 회복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위기로 위축된 두 지역의 경제가 상호 수출을 늘리게 된다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한국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조선과 전기전자업종의 대(對)EU 수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거두고, EU는 주류와 서비스업종의 한국 진출이 한층 활발해질 것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로 보호무역주의의 기운이 팽배한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권인 EU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이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은 세계 경제 전반에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핵심적 위치에 있는 두 지역이 자유무역의 확대를 통해 공동 번영할 수 있다는 분명한 성공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자유무역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EU FTA의 타결은 이미 정부 간 협상은 타결됐지만 비준 절차가 지연되고 있는 한·미 FTA의 진전에도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입장에선 한·미 FTA가 미적거리는 사이 한국과 EU 간의 FTA의 효과가 가시화될 경우 비준을 마냥 미루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자동차 분야 등에서 한국과 EU가 전향적인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도 부담이 될 것이다. 한·EU FTA가 타결되고 신속하게 비준 절차를 마치게 된다면 한국으로선 한·미 FTA의 비준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아쉬운 대로 EU와의 교역 확대를 통해 FTA 체결의 효과를 누리면서 미국 측의 반응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답보 상태에 있는 한·중 및 한·일 FTA 협상에도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EU FTA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마지막 한 획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한·EU FTA의 효과가 크고 기대가 높다고 해서 마무리 협상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특히 대통령의 일정에 맞추느라 무리하게 타결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 없는 협상으로 대미를 장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