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 다섯번째 시집 '부드러운 직선'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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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제는 숲 뒤에 서 있고 싶다. 한그루 나무가 되어 섞여 있고 싶다.

더 낮은 곳으로 가 있고 싶다." 시인 도종환 (都鍾煥.44) 씨가 다섯번째 시집 '부드러운 직선' 을 이번 주중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다.

죽어 헤어진 아내에 대한 못다한 사랑을 절절히 읊어 86년 펴낸 시집 '접시꽃 당신' 으로 뭇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던 도씨는 그 간절한 서정으로 핍박 받는 사람들과 하찮은 것들에 위무와 아름다움을 주는 시를 써오고 있다.

지난 80년대 이후 그는 결코 숲 뒤에 서 있지 않고 앞에 서서 왜곡된 사회와 싸우는 양심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 시집에서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그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들려주고 있다.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여기까지 온 것이다/…/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시집 맨 위에 올린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한 부분이다.

이 길은 우리가 지나온 왜곡된 역사와 현실 그리고 그에 대한 투쟁이면서 인생론적 깊이까지를 지닌다. 도씨 시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역사와 현실을 힘 있는 목소리로 까불지 않고 정서적 자질로 쉽게쉽게 감싸안으면서 생의 깊이를 담아낸다.

해서 그의 시는 해설이 필요 없이 독자에게 직접 촉촉하게 다가간다.

산사 (山寺) 지붕의 너그러운 곡선을 바라보며 쓴 표제시 '부드러운 직선' .그 곡선은 그러나 곧게 쭉쭉 뻗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도씨의 부드러운, 너그러운 정서와 시 속에는 이렇듯 결코 휠 수 없는 정신들이 시퍼렇게 눈을 떠 삶과 사회의 타락를 막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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