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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도 '성차별' 심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질병도 성 (性) 을 가린다. 암의 경우 위암은 2배, 폐암은 6배, 식도암은 10배나 남성이 여성보다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

같은 관절염도 류마티스관절염은 여성이 남성보다 3배 가량 많지만 강직성척추염은 남성이 여성보다 3배나 많다.

이처럼 질병마다 남녀간 발생률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서로 다른 인체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 자궁경부암과 난소암이 여성에게, 전립선암이 남성에게만 생기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여름철 사타구니 사이에 생기는 곰팡이 질환으로 남성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완선 (頑癬) 도 마찬가지. 연세대의대 피부과 이광훈 (李光勳) 교수는 "남성은 음낭이 사타구니의 통기를 방해하므로 음낭이 없는 여성에 비해 곰팡이가 잘 자란다" 고 설명한다.

여성에게 안구건조증.폐쇄각녹내장.비루관폐쇄증의 안과질환이 흔한 이유도 남성보다 해부학적으로 안구의 크기가 작고 눈에서 코로 눈물이 흘러 내려가는 비루관이 좁기 때문이다.

남녀간 서로 다른 생활습관을 지니고 있는 것도 질병의 패턴이 달라지는 이유다. 이 점에선 대부분 남성이 여성보다 불리하다.

예컨대 남성은 여성보다 흡연률이 높아 폐암.심근경색증.만성폐쇄성폐질환의 발생률이 높고 남성 특유의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교통사고나 에이즈가 많다.

남성이 불리한 것은 유전병도 마찬가지다.

색맹.혈우병.근이영양증과 같은 유전병 유전자가 성염색체인 X염색체 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남성에게 훨씬 높은 빈도로 발생한다.

그러나 류마치스관절염.전신성홍반성낭창.갑상선질환.베체트씨병은 유독 여성에게 흔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몸을 적으로 오인, 이른바 자가항체 (自家抗體) 를 만들어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란 점. 노원을지병원 내분비내과 전재석 (全在錫) 교수는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인체면역체계에 작용,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하는 숨은 고리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 들려준다.

여성의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이 심혈관질환과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순기능도 갖지만 자가면역질환과 같은 골치아픈 질환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심술도 부린다는 것.

그렇다면 이처럼 질병별로 남녀의 발생률이 다른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정순 (金貞順) 교수는 "질병을 앓는 유병률은 여성이 높지만 실제 그 질병 때문에 죽는 사망률은 남성이 훨씬 높다" 고 결론내렸다.

97년 국내남성의 평균수명이 69.5세인데 비해 여성이 77.4세로 무려 8세 가까이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유리한 이유를 두가지로 해석한다.

첫째 남성에게 흔한 질환일수록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질환이 많다는 것. 반면 여성에게 흔한 질환은 시름시름 오래 앓는 경미한 만성질환이 많다.

둘째 이유는 여성 특유의 병에 대한 두려움. 金교수는 "여성은 조금만 아파도 바로 병원을 찾는 경향이 있으므로 치명적 질병을 조기발견해 치료할 수 있는 확률이 남성보다 높다" 고 설명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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