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남궁연씨 “신나게 놀고 청소년 문화공간 마련해 줍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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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음악을 하는 시각장애인 후배가 한 명 있어요. 그 친구가 지하철 역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았는데 다 마셨을 즈음 바닥에 있던 이물질이 입에 닿았다더군요. 500원짜리 동전이었다네요. 시각장애인이 종이컵을 들고 서있으니 동냥을 하는 줄 알고 누군가가 동전을 넣은 것이죠.”

‘기부’를 주제로 4일 서울 홍익대 인근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음악가 남궁연씨가 함께 노래 부르고 연주할 후배들과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고병구·김백준·허성은·남궁연·리사·전차인·이정석·선우두영씨. [김태성 기자]


음악가 남궁연(42)씨의 말이다. 남궁 씨는 “컵에 동전을 넣은 사람은 선의에서 그랬겠지만 그 후배는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본인이 필요로 하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요. 남을 돕는 마음은 훌륭하지만 돕는 방법에도 조심스러운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돕겠다는 사람이 우쭐해서 마치 시혜라도 베푸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후배의 경험담을 들은 뒤 남을 돕는다는 의미를 다시 곰곰 생각하게 됐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최근 번지고 있는 기부 문화가 시혜적인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향이 일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부도 일종의 유행을 탄다고 봐요. 나는 현재의 방식을 바꾸고 싶어요.” 그래서 공연 하나를 준비했다. 4일 서울 홍익대 부근 클럽 베라(VERA)에서 이른바 ‘기부&테이크 파티’를 열기로 한 것이다. 행사 이름은 ‘주고 받는다’는 뜻의 영어 ‘기브&테이크’를 살짝 비틀어 만들었다. 피아니스트 김광민, 가수 홍경민 등등 쟁쟁한 문화계 인사를 불러모았다.

“이번 공연은 그냥 ‘신나게 놀자’가 목표에요. 기부를 위한 공연이라고 해서 눈물 질질 짜는 이벤트를 벌이지도 않을 거고요, 감동의 도가니로 억지로 분위기를 만들지도 않을 작정이에요. 무조건 신나게, 즐겁게, 2시간 30분 동안 노는 겁니다. 거룩한 마음으로 오시지 않았으면 해요.”

공연은 공연일 뿐, 사정이 어려운 청소년을 돕기 위한 공연이라고 따로 구별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구별을 하는 순간 공연의 의미나 남을 돕는다는 취지가 되려 퇴색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번 공연은 사회문화나눔협회와 함께한다. 노동부로부터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은 사회문화나눔협회는 문화예술계의 나눔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입장료로 마련하는 수익금은 청소년 문화예술아카데미 설립을 위한 기금으로 쓸 예정이다. 그는 특히 ‘청소년’에 방점을 찍었다. “청소년은 그 자체로 사회 취약계층이에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특히, 대중음악처럼 사회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분야라면 더욱 그렇죠.”

청소년기 갈등이라면 그도 할 말 많다.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의 동생인 윤완선씨가 외조부이고, 그의 아버지는 대학교수였다. 엄한 집안 분위기에 적응이 어려웠던 그는 한때 신촌 일대에서 ‘주먹’으로 통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정신을 차렸다. 참회의 의미로 머리를 빡빡 밀었다. “머리는 앞으로도 영영 기르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목회자의 길도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의 길인 음악을 찾았다. “청소년의 아픔은 나처럼 겪어본 사람이 더 잘 알지요. 음악을 하려는 아이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은 게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입니다.”

이번 공연에는 청소년들이 많이 왔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노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잘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공연 문의 02-2266-4606

전수진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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