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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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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금융권과 공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실업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맞서 한노총과 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의 탈퇴를 선언하고 일련의 파업이 계획되고 있다고 한다.

노동계의 이러한 대응은 구조조정이 마치 근로자계층에게만 불이익을 준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어 경제전문가의 입장에서 당혹스럽고 또한 안타깝기도 하다.

과연 구조조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가 어려운 경제현실을 이겨나가고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변이 필요하고 근로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의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은 한마디로 그동안 곪아터진 환부를 도려내고 새 살을 돋게 하는 외과수술이라고 볼 수 있다.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 그때 그때 임시방편으로 치료한다면 병은 점점 악화될 뿐이다.

아프지만 참고 견뎌 빨리 치료해야 건강을 되찾아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실업과 실질소득 감소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자동차나 가전 등 내구소비재의 내수가 얼어붙고 있어 기업의 도산과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연결고리를 깰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실업을 치유하는 근본대책은 경제의 체질을 강화해 경쟁력을 회복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고용유지는 미봉책에 불과하며, 구조조정을 더디게 해 장기적인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할 뿐이다.

경기회복을 선도하고 향후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분야가 활성화되고 여기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때 나라경제도 살고 근로자의 복지도 보장되는 것이다.

금융산업.공기업을 포함한 기존 산업분야의 구조조정을 과감히 추진하면서 새로운 지식집약적인 유망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중소.벤처기업의 창업 지원을 통한 고용창출이 대규모로 이루어져야 한다.

21세기에는 기존의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정보화사회로의 이행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9세기 중엽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경제 중심이 옮겨간 것처럼 서비스업에 의한 제조업 잠식이 이미 일반화되고 있고, 세계무역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정보통신을 비롯한 지식집약적 서비스업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80년대의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지식집약적 서비스업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확인된다.

다운사이징과 리스트럭처링의 결과 기존의 산업부문에서 밀려나오는 실업자들을 신규 성장분야가 흡수함으로써 인력의 생산적 재분배가 가능했던 것이다.

93~96년의 4년간 총 1천1백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는데, 컴퓨터 및 정보처리서비스업과 의료서비스 등의 서비스업이 주류를 이룬다.

주목할 점은 이들 서비스업의 주도 아래 전반적인 경기가 회복되면서 그간 위축됐던 소비성 서비스업이나 건설 관련 서비스업 등에서도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산업별 취업구조는 중후장대 (重厚長大) 형 제조업과 숙박.음식업 등 소비성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고 정보처리나 통신업 등 지식집약형 서비스업의 비중은 낮다.

지금과 같은 경제적 급박함이 없고 대량실업이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위해 산업구조 개편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경제회복을 선도하면서 고용창출의 가능성이 큰 분야들을 집중개발해 경쟁력 회복과 실업해소를 촉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식집약적 유망산업을 향후 우리 경제의 선도부문으로 발전시키고, 인력양성체계 및 노동시장 하부구조도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재편돼야 한다.

교육기관에서의 인력양성이나 실직자 재훈련 등의 직업훈련 역시 새로이 수요가 창출되는 분야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본래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첨단기술 중심의 벤처기업과 틈새시장을 겨냥한 중소기업 창업을 촉진함으로써 구조조정에서 밀려나온 실업인구들을 신생 중소.벤처기업 그리고 서비스부문에서 흡수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실업대란은 이와 같이 미래 지향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노동계는 파업보다는 새로운 21세기 산업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선

◇ 필자 약력 ^51세 ^서울대 경영학과 ^미 코넬대 경영학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현) ^산업연구원 원장 (현) ^저서 : '수급구조와 물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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