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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당해야 할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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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 상임위원장이 굳이 회의장으로 기자들을 이끌었다. 그러곤 위원장석에 앉아 “오늘 저는 역사의 한 고비를 온 국민과 함께 넘겼다”며 벅차 오르는 듯 말했다. 덕분에 기자들은 의석에 앉아 그의 말을 기록하는 호사를 누렸다. 무려 15분간이었다. 상대 당 의원들은, 회의 때마다 산회 방망이를 두드리는 그 때문에 채 1분도 못 앉는다는 바로 그 자리였다. 위원장은 “(기자) 여러분과 상임위를 하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한 야당 의원은 이렇게 안타까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야당이 표결로 반대한다는 건 여당의 의사일정에 협조한다는 거다. 적극적인 반대는 표결 전 퇴장하거나 아예 불참하는 것이고, 더한 건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는 거다. 더 화끈한 반대는 몸으로 막는 것이다.”

매번 화끈한 국회에 여당은 “잔인하다”며 발만 동동 구른다. 두 배인 몸집에 걸맞게 미리 대처하는 열정과 책임감도, 사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도 없어 보인다. “한번 힘을 쓰긴 해야 할 텐데…”라며 도상훈련을 한다는데 번번이 제풀에 지치곤 한다. 초현실적이다 못해 기괴한 요즘 여의도의 모습이다.

국회의 일이란 게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할 수 있다. 대의(代議), 즉 국민에게서 위임받아 입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끼리는 언성만 높여 볼썽사나울 테니 의원이란 대리인이 나서도록 한 거다. 그래야 협의하기도, 합의에 이르기도 쉬운 까닭이다.

대리인이 제 역할을 못해 왔다는 건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심하다. 수시로 자신을 이해당사자로 착각했다. 중재해야 할 처지란 걸 잊고 당사자인 양 멱살잡이를 했다. 당사자의 이익에 반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최근 비정규직 법안 논의 과정이 그랬다. 비정규직을 위한다고 내세우면서도, 품새는 정규직 옹호였다. 양자의 이해가 상충하는 불황기인데도 말이다. 알고도 그랬다면 사악한 것이고, 몰랐다면 무지의 소치다. 정치적 이익이란 잿밥을 위해 자신의 일을 무자격자에게 하청을 주었다. 오죽하면 ‘국회가 국해(國害)’란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였다.

정당과 정치인에겐 이미 ‘멸종 위기종’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다. 국민과 정부가 직접 소통할 통로가 점차 넓고 다양해질 터인데, 굳이 청해(聽解)와 실행 능력에 이상이 있는 대리인을 세우고 싶어할 리 만무하다는 이유에서다. 20∼30년 시한부 삶을 예견하는 지식인도 많다. 이런 엄중한 상황인데 우리 국회가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듯해 안타깝다. ‘식물’ 상태였는데 이젠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로까지 나빠진 듯하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우리 유권자의 몫인 걸. 투표했든 안 했든 말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3년 뒤 바로잡을 한 표를 행사할 기회가 온다는 점일 게다.

고정애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