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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서핑차이나] 한국은 작은 중국인가?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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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물을 닮았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속성이 말이다. 과거 중국에서 한국으로 문화가 흘러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의 지형이 서고동저인데 비해 한국은 동고서저다. 이런 산세 탓이었을까? 한국은 중국서 흘러온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았다.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렸다. 중국 것을 바탕으로 한 차원 승화 발전시키는 지혜도 발휘했다.
과거 동아시아에 현대적 의미의 주권국가는 없었다.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 바다도 산맥도 자유로이 넘는다. 민족 또한 가리지 않는다. 아니라면 왜 중원으로 들어온 북조(北朝) 유목민들이나 청을 세운 만주족들이 중원의 문화를 받아 들였을까? 그들에게 ‘자존감’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다. 저명한 한글학자 한 분은 평생토록 한글이 중국어에 끼친 영향을 연구했으나 단 하나의 사례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시대 상감청자는 중국에 고가로 수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마치 요즘 한국산 휴대폰이 중국서 고가에 팔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는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지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속성을 갖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는 한·중 문화비교 프로젝트 ‘한국은 작은 중국인가?-한·중 문화의 연속과 변용’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중국은 분명 중화문명권의 맹주로서 과거 명성을 되찾을 것임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한국은 분명 과거에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한국문화를 중국문화의 ‘아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 서양에서는 한국을 작은 중국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목격된다. 이에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다시 중화문명권에 편입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약관의 학자 16명이 최준식 국제한국학회 회장(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의 주도로 모였다. 27일 모임은 1년 여에 걸친 프로젝트의 완료 보고였다. 그 현장을 다녀왔다. 공예, 민속, 음악, 건축, 복식, 언어, 음식, 종교 8개 분야로 나뉘어 진행된 프로젝트 결과물의 요지를 3회에 걸쳐 나누어 소개한다.

Part Ⅰ. [공예] 중국 자기(磁器)와 비교를 통해 본 한국 자기의 특징: 김윤정(고려대 강사)
자기(磁器)의 영문명은 차이나(CHINA)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기 제작 기술을 보유한 나라였다. 고려 초 청자 제작 기술은 중국의 당(唐)나라 말기에서 오대(五代) 시기 저장(浙江)성 월주요(越州窯)의 도공을 대거 스카우트해 전해졌다. 10세기에 전래된 청자 기술은 11세기 체제 정비와 기술 숙련기를 거쳐 12세기 비색청자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중국 송나라와 차별화된 상감청자를 만들어 내 중국으로 역진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상황은 다시 역전됐다. 중국의 자기가 다채(多彩)자기, 법랑(琺瑯)으로 기술혁신을 이루면서 화려함의 극치를 추구한데 반해 조선은 투박한 백자만을 고집했다. 이는 조선왕실이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는 유교적 ‘숭검(崇儉)’의 상징으로 자기를 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선의 부호들은 조선자기 대신 중국과 일본 자기를 더 많이 사용해 국산 백자의 품질은 더욱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10세기 중국과 교류하던 나라는 많았지만 청자 제작 기술을 습득해 스스로 제작할 수 있었던 나라는 고려가 유일했다. 문화란 영향을 주어도 받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한국의 자기문화가 이미 발전된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중국 기술을 끊임없이 선택해 받아들인 뒤 변화하며 발전했다. 조선백자의 기술적 부진은 기술적인 이유보다는 검약한 지배층의 가치관이 과도하게 투영된 결과였을 뿐이다.
자기와 관련해 임진왜란을 거치며 한국의 우수한 자기 기술이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일종의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토론과정에서 제기됐다. 물론 임진왜란 기간 동안 한국에서 잡혀간 도공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지원과 중국 도자기의 총본산 경덕진을 통한 기술 도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계속-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xiaokang@joongang.co.kr
▶한국은 작은 중국인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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