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은증권의 돈 나눠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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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장경제를 받치는 가장 중요한 토대는 사적 재산권의 존중이다.

정리에 들어간 장은증권에서 임직원들의 주주 이익 침해 행위는 시장경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자신이 속한 기업이 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주주 동의없이 정상퇴직금에 1년치 위로금까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나눠 가진 임직원들의 행위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이자 한국증권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다.

사법당국이 과연 이 문제를 주주에 대한 배임행위로 다룰지 주목된다.

만약 퇴직금 수령단계에서 배임행위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장은증권은 지난달말 편법증자사실이 증권감독당국에 적발되면서 영업용 순자산비율이 건전성 최저기준인 1백%에 훨씬 못미치는 16%대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대주주인 장기신용은행이 증자참여를 포기한 상태에서 제2금융권에 이어 증권업에 대한 정리가 시작되면 생존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사로부터 평균 1인당 4천만원을 대출받아 쓴 직원들로서는 기업이 망하기 전 빚 갚을 돈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은증권의 노조는 모기업인 장기신용은행이 기업을 살리는 데 필요한 증자를 포기하고 증권이 예탁한 신탁자금을 안 돌려 준 것과 모기업에 대한 지급보증이 장은증권의 부실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은과 장은증권 사이에는 이같은 비난과 원망이 오갈 수 있다.

그렇다고 장은증권의 돈나눠먹기식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업이 정리되면 가장 나중에 고려해야 할 직원대출금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했다는 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또한 직원 한사람에게 평균 4천만원씩 유리한 금리조건으로 대출해준 것 자체가 주주와 고객의 이익을 충실하게 보호하는 경영행위라고 볼 수 없다.

이같은 방만한 경영은 장은증권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 금융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현상이고 생산성을 낮추는 일이었다.

차제에 감독당국은 금융기관이 직원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해주는 행위에 대해 철저한 감독을 해야 할 것이다.

퇴출은행과 장은증권에서 나타난 일련의 행위는 국제규범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기업을 어떻게 믿고 투자하고 돈을 맡길 수 있겠는가.

감독당국도 이런 비합리적 경영상태를 감시해야 하지만 주주나 고객들도 증권시장에서 평소 경영정보의 공개를 요구해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챙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키우자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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