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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기업구조조정 걸림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요새 한국재벌은 동네북이다 선진국의 다국적기업들과 정부관리들, 노조지도자와 좌파색깔이 강한 학자, 재야세력들이 서로 다른 목적의식을 갖고 두드리는 주된 고객이다.

거기다가 외환위기가 한국재벌의 과잉투자 때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주입받은 많은 국민들의 눈초리도 차갑다.

때마침 지난해 외환위기 이래 긴급히 끌어모았던 투기성 강한 외국자본은 떠나려고 하는데, 중장기 외국자본은 별로 들어오지 않는다.

국내자금시장은 돈이 흐르지 않는 게 주로 기업들의 재무구조는 나쁜데 채산성마저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국민경제를 위해서나, 스스로의 장래를 위해서나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시급하면서 중요한 과업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왜 잘 안되는지 냉정히 살필 줄도 알아야 한다.

새로운 현실에 대한 그들의 인식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첫째는 제도적 걸림돌이 너무 많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을 전제로 해 만들어지지 않은 많은 제도들을 빨리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필요한 방향으로 바꾸어야 하는데도 정부가 게으르거나 국회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증자를 위해 외자유치를 하는 경우라도 고도기술수반사업에만 조세감면혜택을 주고, 증자소득공제제도는 중소기업에만 적용되며 등록세도 꼬박꼬박 챙긴다.

구주매각을 통해 외자유치를 하는 경우는 더 혜택이 없다.

합병요건은 매우 까다롭고 절차는 복잡하다.

합병비율 계산방식은 관계법률간에 차이가 있고, 상장회사와 비상장회사간 합병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정거래법은 기업결합을 제한하고, 피합병법인의 이월결손금 승계는 이뤄지지 않는다.

자산을 양도해 부채를 상환하고 싶어도 과세당국이 마음대로 정하는 '정상가격 (시가)' 에 팔지 않으면 부당행위로 간주돼 과세당하기 십상이고, 양도차액의 54%는 각종 세금으로 날아간다.

양수자는 매매가액의 5.8%만큼 지방세를 내야 하고 지루한 주주총회 결의절차를 밟는데다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응하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사업을 포괄해 양도하거나 양수받는 경우는 세부규정이 없어 자산이 없어 완전분리된 별도 사업장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실제 집행이 불가능하고, 자산양도의 경우와 같은 엄청난 세금납부를 각오해야 한다.

그나마 상호지급보증된 회사들의 물건은 금융기관들이 해제를 잘 안해준다.

현물출자해 증자하거나 법인을 신설하는 경우도 세금투성이고, 합작지주회사 설립에는 주식의 현물출자에 대한 각종세금부과문제, 배당소득의 이중과세문제, 손자회사출자금지로 인한 하청업체지원불가문제 등이 뒤따른다.

자회사의 조세감면배제, 자회사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납부 등 부담도 많다.

둘째는 행태적 걸림돌이다.

애써 해외매수자를 찾아 자산매각 등 협의를 끝내 놓으면 노동조합이 고용승계나 특별보너스지급 등을 명분으로 훼방놓기 일쑤인데 법집행당국은 그럴 때 잘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자산매각이 가능하거나 증자가 가능한 자산거래시장을 정부당국은 잘 조성해 놓지 않고 알짜기업도 팔라는 얘기만 소리 높여 한다.

자산담보부채권 (ABS) 등 자산의 유동화시장이나 특수목적펀드설치도 하반기께 될지 안될지 모른다면서 왜 상반기에 기업구조조정실적이 없냐고 다그친다.서둘러 팔라니까 외국인들은 생선시장에서 오후 7시쯤 물건 사는 자세를 취하고, 국제결제은행 (BIS) 노이로제에 걸린 금융기관들은 기업들의 덤핑매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빅딜 소문 때문에 당분간 가격도 정할 수 없는데 거래가 되겠는가.

셋째로 외국인투자가 부진한 이유도 잘 알아야 한다.

과다한 행정규제는 여전한데 기업인수가액 결정기준이 한국측 (매도) 과 외국측 (매입) 의 관행이 다르고, 고금리에다가 회계투명성이 낮고, 과다고용승계요구가 다반사이며 국제간 매매를 성사시킬 만한 전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재벌들의 기피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기업의 구조조정을 빨리 추진하려면 각종의 걸림돌 (제도.행태.실무) 을 제거하는 게 급하지 외국사람한테 특혜 줘가면서 한국기업의 이미지를 나쁘게 선전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다.

은행과 기업 모두가 빨리 구조조정 하는 게 유리하다.

기업경영환경은 달라진다는 확신을 부여해야 한다.

요새 한국기업들은 구경꾼 많은 정돈 안된 들판에서 큰 수술 받도록 벗겨진 느낌은 아닐지 궁금하다.

이런 상태에선 구조조정의 궁극적 목표인 신용회복.실업자 최소화.자원의 미래지향적 배분 모두에 좋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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