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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걸쳐 8권 다 모은 『이충무공전서』 가장 아껴 기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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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상희 전 장관이 10만여 권의 장서 가운데 특별히 애착을 갖는 책이 있다. 수백 년 전 만들어져 문화재급인 것도 있고, 내용이 독특해 흔히 찾아보기 힘든 책들이다. 그가 가장 먼저 꼽은 애장서는 조선 정조 때 나온 『이충무공전서』다. 총 8권으로 이뤄진 이 책을 모으는데 십 수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전 장관은 “권수(卷首;1권)에서부터 8권째까지 차례로 모았는 데 중간에 7권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다가 지난해에 겨우 구입해 전집을 완성했다”며 “300만원에 구한 권수가 가장 귀하고 구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국내에서 개인이 이 책을 모두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란다. 언젠가 고서 경매에 나온 적이 있는 이 책은 3000만원이 넘는 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1918년에 조선연구회가 만든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도 그가 특별히 아끼는 책이다. 경성에서 앨범 식으로 제작된 이 책에는 경성의 네 군데 권번(券番·기생 조합의 일본식 표기)에 소속된 기생 487명과 지방의 12개 기생조합에 소속된 기생 118명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사진 하단부에는 이름과 출생년도, 생김새, 특기가 기록돼 있다. 특히 이듬해 3·1 운동 만세시위를 펼친 수원 기생 30여 명의 얼굴과 인적사항이 책 후반부에 포함돼 있어 학계의 큰 관심을 끈 책이다.

역시 기생과 관련된 『장한』(長恨)이라는 잡지도 국내에 몇 남아 있지 않는 희귀본이다. 일제시대 기생들이 직접 만든 책으로 자신들의 신세타령과 설움이 담겨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신문물과 사회의 이모저모도 산문과 시로 실려 있다. 이 잡지는 창간호와 2권까지만 나오고 폐간돼 더욱 희귀한 자료로 꼽힌다. 수년 전 국문학을 전공한 한 교수가 쓴 논문 중 이 잡지가 언급된 적이 있었는데 창간호만 나온 뒤 폐간됐다고 썼다가 이 전 장관의 지적을 받고 논문을 수정한 적도 있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 때 유령이라는 술꾼이 술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지은 『주덕송』(酒德頌)이라는 책을 한석봉 선생이 보고 다시 쓴 목판본도 그의 대표 컬렉션 중 하나다. 이 전 장관은 이 목판본을 구하기 위해 치열한 경매를 거쳐 수백만원을 주고 샀다고 한다. 최근 그가 쓴 『한국의 술 문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렵게 구한 책이다.

조선 고종 때인 건양 원년(1896)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교과서인 『심상소학』(尋常小學)도 그가 꼽은 책 중 하나다. 이 책은 개화기에 만들어진 교과용 도서로서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신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국한문혼용체로 만들어졌다. 당시 두 가지 종류로 나왔는데 봄에 나온 것에는 그림이 함께 실려 있고, 가을에 나온 것은 그림이 빠져 있다. 서지학자들은 그림이 그려진 것의 가치를 더 높게 치는데 이 전 장관이 이것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강제로 일본에 합병된 융희 10년(1910)에 만들어진 국어교과서 3~4권도 함께 갖고 있다. 국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소장가치가 높은 책이다.

일제 때 만든 지도인 『조선임야분포도』는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이 지도엔 당시 조선의 지형도가 자세히 나타나 있다. 나무와 풀, 모래가 지역별로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표시돼 있다. 이 전 장관은 “이 지도를 보면 당시 한반도가 얼마나 황폐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일제가 용산에 군대를 주둔시킬 목적으로 그에 필요한 건물과 각종 시설물의 설계도·공사비 명세를 기록해 놓은 책도 비극적인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행정자료다. 이 밖에 조선시대에 형벌을 가할 때 쓴 곤장과 형틀 등 온갖 형구(刑具)의 모양과 길이, 용도를 그림과 함께 자세히 기록해 놓은 『형구전정』, 조선 선조가 중국 황제에게 “황해에서 중국 어선이 고기를 불법으로 잡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고 요청한 외교문서 등은 박물관에서나 있을 법한 자료들이다.

고성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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