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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칸 방에 가득한 책 10만권 지치지 않는 노년의 정열 기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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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노태우 정부 시절 내무부와 건설부 장관을 지내고 1991년에 공직을 떠나 현재 조용히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상희(77) 전 장관. 그가 최근 1700쪽(200자 원고지 1만장) 분량으로 '술-한국의 술 문화'라는 책을 펴냈다. 자료수집부터 집필까지 10년을 준비해 내 놓은 대작이다. 그는 이 책을 내기 위해 수천 권의 책과 관련 문헌을 수집했다. 이 전 장관은 전국의 고서점 주인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고서수집가다. 그의 자택 지하서고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고서들로 가득하다.
중앙선데이 취재팀이 서울 성산동 이 전 장관의 자택을 방문해 그의 보물창고인 지하서고를 직접 들어가 봤다. 미로처럼 이어진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온갖 종류의 책으로 가득한 6개의 방이 나온다. 그가 가지고 있는 책은 모두 10만 여권이나 된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평균 장서 보유 수가 9만 권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작은 도서관 하나와 맞먹는 양이다. 노년에도 책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이 전 장관을 만나 책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기사 전문.



서울 마포구 성산동 한 주택가 막다른 골목에 있는 2층 양옥집. 담벼락을 따라 향나무 한 그루와 대나무들이 운치 있게 서 있는 이 집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조그마한 마당 오른쪽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면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공간으로 들어가는 허름한 철제 미닫이 문이 나타난다. 문을 열자 한낮인데도 볕이 들지 않아 내부는 무척 어두웠다. 은은한 종이 냄새와 지하 공간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가 나 있다. 이 통로들 좌우에 늘어선 5단 책장엔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통로를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또 다른 문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 책으로 발디딜 틈이 없다. 책장이 모자라 그냥 바닥에 쌓아놓은 책의 키는 천장까지 닿아 있다. 지하 공간엔 이와 같은 책 방이 모두 6개가 있다. 실내는 어둡고 좁은 통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 곳곳에 달려 있는 불을 켜지 않으면 이 6개의 방을 찾아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이상희 전 장관이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 198㎡(60여 평) 지하서고에서 지방재정·세정·미술·건축 등 종류별로 분류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책들은 방마다 지방행정·재정·미술·건축·다리·하천·물·음식·음악·전쟁 등 종류별로 배치돼 있다. 국내에서 출판된 책뿐 아니라 일본·중국·미국 등에서 나온 외국 서적들도 눈에 많이 띈다. 최신 서적뿐 아니라 조선시대와 이후 한말과 해방 전후에 나온 오래된 책까지 시대도 제각각이다. 지하 서고에는 책 외에도 소중한 자료들이 있다. 조선시대 임금의 교지와 신분증, 일제시대 때 각종 토지 서류, 증명서, 잡지, 지도, 광고와 같은 희귀 자료도 널렸다.

198m²(60평)가량 되는 지하 서고의 주인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0년대 말~90년대 초 내무부와 건설부 장관, 한국토지개발공사 사장을 지낸 이상희 전 장관이다. 그에게 이 지하 서고는 ‘보물창고’다. 30년째 살고 있는 이 집의 지하 서고를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들락거리지만 그는 “하루 종일 혼자 이곳에 틀어 박혀 있어도 전혀 심심한 줄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공직에 있을 때부터 책 소장가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전국의 고서점 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고서 수집가이기도 하다.

이상희 전 장관은 1932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성주농고를 나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61년 행시 13회로 관가에 들어선 뒤 내무부에서 주로 재정 분야를 다룬 행정관료다. 산림청장, 진주시장, 대구시장, 경북도지사를 거쳐 내무부 장관, 건설부 장관을 지냈다. 89년 한국토지개발공사 사장으로 일하며 분당·일산 신도시 개발 계획에 깊이 관여했다. 고서 수집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으며 98년 한국애서가클럽에서 제7회 올해의 애서가상을 받기도 했다.

“지하서고에 종일 있어도 안 심심해”
“10여 년 전엔가 6만여 권이었는데 지금은 10만 권 정도 될 것”이라는 이 전 장관은 언제부터인가 책 숫자 헤아리는 것을 포기했다. 책 리스트를 만들어볼까 마음먹은 적은 있다. 대학원생들의 도움을 받아 시도를 해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리를 포기했다. 감당할 분량을 넘어선 데다 옛 자료들은 전문가들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전 장관은 분류만 해두었을 뿐 어떤 책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책을 찾기 위해 지하 서고에서 몇 날 며칠을 헤맨 적도 많고, 있는 책을 다시 구입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전 장관은 자신만의 독특한 책 수집의 원칙과 기준이 있다. 우선 공직 생활을 하면서 직무와 관련된 책을 집중적으로 모았다. 60년대 초부터 내무부에서 지방재정·세정 등 업무를 20여 년 맡으며 관련 서적들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진주시장, 대구시장, 산림청장, 경북 도지사, 내무부 장관 등을 거치며 나무, 도로, 도시건설·관리, 호수·하천·댐 관리 업무 등 지방행정 전반으로 관심사가 옮아갔다. 도시 계획을 짜기 위해 수시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다녀보고 싶었지만 공직자의 몸이라 그럴 수는 없었다. 대신 외국 도시에 관한 책을 모조리 모아 섭렵했다. 도시를 입체적으로 느끼기 위해 그는 세계 각국의 유명 도시를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 화보도 수백 권을 수집했다. 이렇게 모은 책은 그에게 많은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1990년 토지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그는 신도시 개발 계획을 주도해 분당과 일산 설계에 깊이 관여했다. 특히 일산 호수공원은 이 장관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돈을 주고 매입한 30만 평의 땅에 물을 끌어와 호수를 만든다는 구상은 당시 누가 봐도 황당해 보였다고 한다.

“스위스 남부의 레만 호수를 모델로 일산 호수공원을 구상했어요. 땅을 깊게 파 물을 채우고 용궁이 있는 수중공원을 만들 생각이었죠.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시내를 도연명의 시에 나오는 무릉도원 같은 풍광으로 조성하는 생각도 했고요. 창덕궁의 부용정을 본떠 호수 한가운데 월영정이라는 정자를 지으면 어떨까 상상도 해 봤지요.”
그의 이런 생각이 모두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신도시에 어울리는 친환경적인 인공호수가 탄생하는 데 그가 수집한 책은 아이디어 뱅크나 다름없었다.

이상희 전 장관은 1932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성주농고를 나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61년 행시 13회로 관가에 들어선 뒤 내무부에서 주로 재정 분야를 다룬 행정관료다. 산림청장, 진주시장, 대구시장, 경북도지사를 거쳐 내무부 장관, 건설부 장관을 지냈다. 89년 한국토지개발공사 사장으로 일하며 분당·일산 신도시 개발 계획에 깊이 관여했다. 고서 수집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으며 98년 한국애서가클럽에서 제7회 올해의 애서가상을 받기도 했다.

고향과 관련된 건 종이 쪼가리까지 수집
그는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때 지방행정과 도시계획을 기록한 문헌, 각종 측량자료 등을 고서점에 다니며 모았다. “역사를 제대로 꿰고 있어야 각 지방의 특성에 맞는 지방행정을 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나무와 꽃에도 관심이 커 그가 수집한 식물 관련 서적만도 수천 권에 이른다.

“식물 관련 단행본으로 가장 먼저 쓰인 책이 『화암수록』일 겁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과 함께 조선시대 2대 원예 전문서로 꼽히는 귀중한 책이죠. 이것을 구하기 위해 인사동 고서점인 통문관 설립자인 이겸로 선생을 3년 넘게 쫓아다녀 이 필사 유일본을 손에 넣었습니다.”

학자들도 접하기 어려운 책이라 그런지 『화암수록』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다고 했다. “『화암수록』의 저자가 화암이 아니라 송타라고 적혀 있는 책자가 있는가 하면, 모 신문의 유명 칼럼니스트는 『화암수록』에 나오는 이야기를 『양화소록』의 내용으로 잘못 알고 신문 고정란에 버젓이 인용한 예도 있어요.” 그는 전공 학자들조차 ‘책’을 몰라 서지학적 오류를 범하는 예가 종종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직무 관련된 것이 아닌 책 수집의 기준으로 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고향’이다. 이 전 장관의 고향은 경북 성주다.

“어린 시절 지독히 가난한 형편 때문에 교과서 외에 책 한 권 살 돈이 없어 눈총을 받으며 책을 빌려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책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던 것도 그런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고향 성주에 대한 애착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고서점을 돌아다니며 성주에 관련된 것이라면 종이 쪼가리 한 장이라도 수집했어요.”

대표적인 것이 조선시대 문호 정철(1536~93)이 지은 ‘송강가사’의 성주본(星州本)이다. 고교 시절 국어책에서 배운 ‘사민인곡’이 실려 있는 가사집이다. 1747년 성주 목사를 지낸 정철의 5대손이 펴낸 책으로 정철의 가사가 가장 많이 수록된 판본이란다. 이 전 장관은 “국문학적 가치는 크겠지만 사실 내 관심사 밖에 있는 책이었는데 단지 성주에서 만들어진 책이라는 이유로 한달음에 달려가 구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성주 출신 가수로 일제시대 때 활약한 백년설의 일대기를 기록한 『오늘도 걷는다마는』(2003년)이라는 책을 펴낸 것도 고향이라는 키워드 때문이었다.

고향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한다는 소문이 전국 고서점가에 퍼지자 난감한 일도 생겼다. “고서점 주인들이 자료가 있다며 연락을 자주 해왔는데 내가 꼭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값을 비싸게 불러 구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어요. 자료 수집에 집착하다 보니 내가 값을 올려놓은 꼴이 된 거죠.”

책을 평생 모으다 보니 책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다. 이 장관이 20년 동안 찾아 헤맨 책을 아파트 한 채 값을 주면 팔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100만원이 넘는 자료를 선뜻 공짜로 준 고서점 주인도 있었다. 30년째 살고 있는 성산동 집이 유일한 재산인 그는 공직 은퇴 후 책 살 돈이 없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또 다른 책을 팔아야 할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가 아끼는 『화암수록』을 구하기 위해 돈을 빌려 1년6개월에 걸쳐 갚기도 했다.

“책의 가치 알아준다면 다 기증할 것”
“아주 오래전 꼭 필요한 책을 사기 위해 고려시대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전집 27권을 모두 판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어요. 서지학적으로 귀하지만 내게 꼭 필요한 책인지 여부가 수집의 기준이었으니까요. 여유가 있었으면 팔지 않았겠지만….”

신간 서적이야 외국의 잡지와 신문에서 소개하는 목록을 보고 구입하면 되지만 고서 수집에는 정성이 필요하다. 고서 수집을 위해 그는 틈나는 대로 서울 인사동 골목과 전국 각지의 고서점을 샅샅이 찾아 헤맸다. 매달 셋째주 토요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에서 열리는 고서와 고문헌, 민속자료 경매장엔 꼬박꼬박 들른다. 필요하다면 해외 고서점까지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의 고서점거리인 도쿄의 간다나 오사카의 우메다를 갈 때는 반드시 일본 전국 고서점 지도를 가지고 가 북 헌팅을 한다. 일본의 고서 중개인(나카마) 중에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란다.

요즘 그에겐 이 많은 책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할지가 걱정거리다. 몇 년 전 여름 큰 비가 와서 지하 서고에 물이 스며들어 3000여 권이나 되는 책을 버려야 할 때도 있었다.

“30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여름에 비만 내리면 잠을 자지 못합니다. 밤새 펌프를 돌려 물을 퍼내기도 하고, 난로를 피우고 제습기로 습기를 제거하지만 언제까지 책들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지….”

슬하에 2남2녀를 뒀지만 자식들에게 책을 물려줄 생각은 없단다. 언젠가는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오래된 생각이다.

“정부나 지자체 혹은 뜻 있는 단체에서 적당한 보관 시설을 지어 책을 기증할 수 있으면 좋지요. 아직은 내 책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분들이 없어 앞으로도 당분간 지하 서고에 보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는 올여름 장맛비에 또 한번 밤잠을 설칠지도 모른다.

고성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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