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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신발이 다 닳도록 뒤로 걷던 ‘삐릿’의 추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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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05면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아니, 네버랜드를 향해 떠났다.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드라이아이스처럼 영원히 이 행성의 표면을 문 워킹하고 있을 줄만 알았던 그가 이제 달나라 너머, 은하계 너머, 아니, 이 우주 너머의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것이다. 유려하게 휘갈겨 쓴 ‘Thriller’ 글자 아래에서 순백색 광휘를 뿌리는 재킷을 걸친 채 품 안의 새끼호랑이와 함께 그윽한 미소를 날리던,

라이방 선글라스 뒤에 감춘 큰 눈을 반짝이며 흰 장갑 낀 손을 들어 세계 황태자처럼 수만 군중의 환호에 답하던, 그 많은 당대의 스타들에게 일제히 헤드폰을 씌워 놓고는 한 자리에서 ‘위 아 더 월드’를 입 모아 외쳐 부르도록 드넓은 판을 깔아주던, 시뻘건 가죽 의상으로 무장하고는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좀비들과 함께 브레이킹 하던, 스프링처럼 골반을 튕기며 단호한 앞차기와 함께 ‘삐레-’를 외치던, 폴 매카트니와 ‘그녀’를 두고 귀엽게 티격태격하던 그는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 그대로 살아 있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라. 교실, 복도, 운동장을 가리지 않고 연마되던 문 워킹 덕분에 희생된 우리들의 신발 바닥이 과연 몇 짝이었으며, 그의 반장갑을 최저예산으로 재현해내기 위해 잘려나갔던 멀쩡한 장갑이 과연 몇 켤레였으며, 그의 딸꾹질 창법을 흉내 내다가 그만 결절된 성대가 과연 몇이었으며, Beat it을 ‘삐릿’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맞는지 ‘삐레’라고 발음하는 것이 맞는지를 놓고 논쟁하며 튀긴 침 방울이 과연 몇 L였는지를. 그렇게, 우리들의 머릿속 창고 안에 쌓여 있는 수많은 보물 중,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과 얽혀 있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리하여, 사실은, 마이클 잭슨은 이미 네버랜드 안에 살고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물론 샌타바버라에 있는 2800에이커짜리 테마파크 얘기가 아니다. 그의 네버랜드는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지만, 그 어떤 현실보다 선명한 우리들의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이미 탄탄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안에서 마이클 잭슨은 영원히 20대인 채로 반짝이는 검정 구두와 중절모를 쓴 채 문워킹하며, 눈물 흘리고 비명을 내지르고 졸도하는 수만 관중 앞을 휘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마치 누군가 실수로 포즈 버튼을 누른 것처럼.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2009년 6월 25일보다 훨씬 오래 전의 시점부터 마이클 잭슨을 떠나보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성형 중독자, 아동 성추행자, 게으른 왕년 스타, 사치를 일삼는 멍청한 빈털터리, 그리고 수퍼 바이러스 감염자까지…. 한때는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듣고, 흥분하고, 전율했던 우리들의 피터팬이 세월의 힘과 잔인한 현실에 침식되어 가는 과정을, 우리는 똑바로 지켜볼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우리들 기억 속 왕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건설해 낸 네버랜드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리고 괴물의 이미지를 뒤집어 쓴 채 홀로 남겨졌다. 한 사람의 천재적인 작곡가 겸 보컬리스트, 혁신적인 안무가 겸 춤꾼, 한 시대를 정의해버린 엔터테이너, 그리고 꿈을 꾸는 한 인간으로서의 그는 말끔히 잊혀졌다. 그는 세계 치유라는 낯간지러운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주정뱅이, 백인이 되려다 실패한 ‘가장 바보스러운 ‘흑인’ 미국인’으로 전락했다. 낙원은 더 이상 낙원이기를 멈춘 채 살아있는 시체를 위한 거대한 관이 되어갔고, 전설은 묘비명으로 변해갔다.

만우절 농담처럼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이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래서다.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Thriller 뮤직비디오의 좀비들처럼 칙칙한 무덤을 박차고 나와 다시 무대에 서 있어야 옳았다. 그리고 주인 잃은 자신의 왕국으로 귀환해 다시 군림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를 잃은 지금 우리는 기껏해야 그가 남긴 말을 그에게 되돌려주는 일밖에 할 수 없다. ‘You are not alone’이라고.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1980년대 고교생 록밴드의 좌충우돌 활약을 그린 장편소설'삐릿'을 썼다. 방송작가, 블루스 기타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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