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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말의 혼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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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얼마 전 어느 광역시에 있는 한 예식장 이름이 ‘예술의 전당’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지역에 대해서는 워낙 정보가 없는지라 짐작하건대 아마 그곳에도 ‘예술의전당’이 있고 예식장은 거기에 부설된 수익사업체려니 했다. 사실을 알아보니 그냥 예식장 이름일 뿐이었다.

역시 20년도 더 전에 배우 최주봉씨는 TV 드라마에서 “누님, 예술 한번 땡기실까요”를 연발했다. 아니, ‘예술’이 아니고 ‘야술’이었던가. “야, 예술이네”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인 듯싶다. 이를테면 자장면 면발을 멋지게 뽑아내는 주방장 앞에서 “예술이네”라고 감탄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새 아이들은 서양 명화 같은 진짜 예술작품을 앞에 두고도 “예술이네”라고 감탄한다. 그것 참 야릇한 언어 사용이다.

무슨 뜻으로 지은 예식장 이름일까 궁금해졌다. 결혼식을 ‘예술처럼’ 거행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결혼 또는 결혼 생활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는 믿음에서 비롯한 이름일까? ‘예술의 전당’이라는 예식장 이름이 뭔가 자꾸 켕긴다. 공자님의 ‘정명(正名)’을 따른다면 ‘혼례의 전당’이어야 옳을 것 같은데.

아직 승차권으로만 지하철을 타던 시절, 한 승객이 창구에 대고 “일급”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표를 팔던 역무원은 지하철에 무슨 일급, 이급이 있단 말이냐 싶었는지 그냥 한 장을 내줬는데 그 승객은 여전히 “일급”을 외쳤다. 다시 보니 그 사람 뒤로 무려 여섯 명의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일급’은 ‘일곱’을 의미했던 것이다. 일상생활의 간단한 의사소통도 알고 보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하물며 평소에 관계 짓기 힘든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고대 중국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정치라는 것은 아마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의 천하가 평안하다고 느낄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 이것은 곧 정치의 완전한 실패를 뜻한다. 들리는 말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애초에 정치를 싫어한다고 하니, 그렇다면 이 나라는 당분간 평안하기 힘들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소통’의 중요성을 스스로 강조했던 것이 이 정권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아무리 봐도 소통에 전혀 소질이 없어 보인다. 다른 예를 들어 뭐 하랴. 자신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나간 직전 대통령에게 일어난 참담한 일이 많은 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데,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현 대통령은 그 참사에 대해 아무런 정리를 해주지 않는다. 한나라당 쪽에서 나온 지적처럼 “부덕의 소치” 운운하는 상투적인 말이라도 국민들은 듣고 싶었을 텐데, 아무 얘기도 없다. 그러니, 아물어야 할 국민들 상처가 지금도 계속 덧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면 전환용 개각은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라고 한다. 이 말에서는 상당히 심각하면서도 좋지 않은 증세가 느껴진다. ‘국면 전환용 개각’과 같은 표현은 언론에서 쓰는 것이지 당사자인 최고권부가 쓸 말은 아니다. 작가더러 작품을 쓰라고 했더니 엉뚱하게 창작은 하지 않고 비평을 하고 있는 꼴이다. 국민들이 웬 ‘국면’을 전환하길 바라겠는가. 청와대의 입장을 적절한 표현으로 번안하면 아마 이런 말 아닐까. “쇄신할 이유도, 새로이 각오를 다질 까닭도, 면면을 바꾸어 다시 출발할 일도 없다.” 소통이란 단어에 혼란이 온다. 하긴, ‘소통’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말길이 꽉 막혀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요 며칠 사이에 ‘중도’ 지향론이 요란하게 세상을 울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서울의 한 재래시장을 찾아 어묵을 맛보며 서민들 고충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제발 ‘중도’와 ‘서민’만큼은 국민이 생각하는 말뜻과 정확히 일치해야 할 텐데.

정재숙 문화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