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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땅 십승지를 가다]15.끝 강원도 정선군 북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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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해안에서 낙조를 바라보면 대개 황홀감에 젖는다.

이에 비해 강원도 어느 산마루에서 넘어가는 해를 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때 누군가 부르는 "세월아 네월아 나달 봄철아 오고 가지 말아라/알뜰한 이팔 청춘이 다 늙어를 간다" 는 정선아라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귓불을 건드리면 애간장이 녹는다.

과연 산다는 게 뭔가.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강원도 땅은 이렇게 인생의 깊이를 되새기게 한다.

굳이 '정감록' 을 들먹이지 않아도 강원도는 영동이나 영서 어디든 십승지가 아닌 곳이 없다.

강원도의 여러 산골 중에서 특히 정선은 '무릉도원' 으로 불렸다.

하늘이 만들어 놓은 험준한 산들이 고을마다 둘러싸고 있어 웬만한 장정 한 사람이 고개만 지키면 외적의 침입이 불가능하다.

이를 자랑하듯 정선에서 북평면으로 넘어가는 반점고개에는 '만세성도 (萬歲聖都)' 라는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정선에서도 정감록이 꼽는 십승지는 상원산 (上元山) 동남쪽 일대다.

행정명으로 정선군 북면 여량리와 유천리, 구절리 (九切里) , 봉정리 (鳳亭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량은 아우라지와 함께 널리 소개된 곳이다.

유천리는 구절리 입구 마을로 이곳에선 '흥터' 라고 부른다.

패가가 없는 부유한 동네다.

봉정리는 임계면으로 넘어가는 중간지대로 역 (驛) 이 있던 마을이다.

반륜산 (半輪山 : 지지 않는 해) 이 지키고 있어 아직 속세의 때가 묻지 않았다.

구절리는 노추산 (魯鄒山) 이 진산이다.

또 상원산이 안산으로 가마솥처럼 버티고 서서 구절리의 지기가 누설되는 것을 막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예부터 노추산 아래 만인활거지지 (萬人活居之地)가 있다고 했는데 구절리가 그곳이다.

60년대부터 지난 92년까지 8개 석탄광업소에 근무하는 5천여명의 근로자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앞에 있는 상원산은 그 정상에 오르면 운동장 크기의 몇 배나 되는 평지가 있다. 거기서 나는 산나물은 기근을 막아준다.

가히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춘 승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증조부 때 평안도에서 이곳으로 와 토박이가 됐다는 송창석 (63) 씨의 자랑이다.

92년 산업합리화조치로 탄광이 폐쇄된 후 이곳은 한낮에도 적막감이 감돈다.

그러나 송씨를 비롯한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다.

노추산과 아우라지 그리고 정선선을 잇는 관광자원이 처녀림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선 = 최영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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