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vs‘엄마’=소설을 발표할 때 인기를 예상했느냐고 물으셨지요? 그런 것을 누가 알 수 있겠어요. 저는 이 책이 사랑을 받은 게 내 힘이 아니라 엄마의 힘인 것 같아요. 그런 줄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엄마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었던 사람이 그만큼 많았던 게 아닐까요. 처음 제목은 『어머니를 부탁해』였습니다. 300매 가까운 분량을 ‘어머니’로 써내려갔는데 잘 써지지 않더군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목을 바꾸고 원고지에 ‘어머니’ 대신 ‘엄마’가 등장하면서 처음에 짐작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어머니’보다는 ‘엄마’가 친근하고 본능에 가까운 말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엄마에게 준 ‘나’라는 호칭=‘엄마’라는 존재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파악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 사람의 시선을 빌려올 수 밖에 없었어요. 작품에서 화자(話者)를 ‘너’ ‘그’ ‘당신’ 등으로 쓴 이유입니다. 그러고나선 엄마에게만 ‘나’라고 말할 수 있게 했어요. 그것은 제가 작가로서 엄마에게 주는 최대의 헌사였지요. 자신을 ‘나’라고 부르게 하고, 당신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나처럼 살지 마라”=엄마들이 그러시죠. “나처럼 살지 마라”고. 이 말을 우리는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들이 통과해온 시간을 ‘희생’이라는 말로 단순하게 압축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요. ‘희생’이란 말에 묻히는 게 참 많거든요. 엄마들이 “나처럼 살지말라”는 것은 “힘들었다, 너희는 힘들게 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너희와 소통하고 싶은데 너무 멀게 느껴지는구나”라는 말이 아닐까요?
◆요즘엔 이런 엄마 없다?=과거의 ‘어머니 상(像)’을 불러오려는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엄마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나요? 없는 걸로 치는 우리가 앞서 간 것은 아닐까요? 소설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라고 하지요. ‘엄마’라는 존재를 통해 질문을 던졌을 뿐입니다. 제 자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냐고요? 저는 ‘정든 지옥’이라고 생각해요(웃음). 힘들 때 쓰러지지 않게 세워주지만, 정작 움직이고 싶을 때 붙잡는 것…. 이 책을 읽으신 제 어머니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구요? 단 한마디 하셨어요. “고맙다”고. 저는…“제가 고맙죠”라고 했어요.
이날 ‘저자와의 만남’에 이어 이튿날인 25일 기자회견을 연 신씨는 새 장편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29일부터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연재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데에 더 울림을 갖는 언어가 필요한 때”라며 “내 소설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설 제목은 최승자 시인의 시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따왔다.
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