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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여름 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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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며칠 전 절에 다녀왔다. 지게에 뭔가 점점 더 많은 짐을 싣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러다간 한 걸음은커녕 일어서지도 못할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막 부린 뒤끝이었다. 마음이 급체한 듯했다. 그래서 여름 산사를 찾아갔다.

여름산은 몸이 건장했고, 숲은 빼곡했고, 무성한 나무 그늘은 깊었다. 나는 숲길을 걸어갔고,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며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물소리가 점점 명백하게 물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생각이 번잡하게 일어나는 것을 줄이고 앉아 있었다. “있는 그대로가 귀하니 일부러 꾸미지 말라(無事是貴人 但莫造作)”는 임제 선사의 말씀이 생각났다.

둥근 통에 담긴 물처럼 고요해졌다. 나의 몸을 한구석에 앉혀두고 다른 생명들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내 의지대로 바깥을 움직이지 않고, 바깥이 움직이는 것을 잠잠히 말 없이 바라보았다. 나로 인해 그들 세계가 교란되지 않도록 한구석에 앉아 있다 조용히 일어서 절로 돌아갔다.

천천히 절로 걸어 돌아와 저녁 예불을 올렸다. 산나물과 말간 국으로 차려낸 아주 간소한 밥상으로 저녁을 먹었다. 스님께서 차를 내주셨다. 스님과 햇차를 달여 마셨다. 찻잔에는 산빛 물빛이 어렸고,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이 불어 들어왔다. 초의 선사가 “솔 솔 솔 찻물 끓는 소리 시원하고 고요하니 / 맑고 찬 기운 뼈에 스며 영혼을 일깨우네”라고 노래한 뜻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가겠노라고 스님께 아뢰고, 스님의 처소를 나와 대웅전에 가만히 소종(小鐘)처럼 한 차례 더 앉아 있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투정부리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무정차 버스를 타고 어딘가 서둘러 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묻지도 않으면서. 들사슴처럼 놀라서 뛰어가는 뒷모습이 얼핏 보였다. 마치 달빛을 탐내서 물에 뜬 달을 바가지로 퍼 항아리에 담아가는 사람처럼 어수룩하게 보였다.

내가 절을 찾아가는 것은 어떤 큰 것을 얻으려는 목적에 있지는 않았다. 다만 내 삶의 속도를 잠깐 돌아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었다. 삶을 다소 느릿하게 살면 그만큼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쉬게 하고, 그리하여 잠깐이나마 골짜기를 내려오는 바람처럼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었다.

고려시대 학자 이규보가 산승(山僧)의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읊기를 “고목나무 옆의 쓸쓸한 방장 / 감실에는 등불이 빛나고 향로에는 연기 이니 / 노승의 일상사 어찌 번잡하게 물어야 알리 / 길손이 이르면 청담하고 길손이 가면 존다”라고 했으나, 그것은 내가 궁극에 가 닿으려는 바는 아니었다. 어찌 감히 꿈에라도 언감생심 그 경지를 바라겠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가령 다음과 같은 삶의 태도였다. 다만 좀 덜 받아도 섭섭해 하지 않기, 화가 불기둥처럼 일어도 화를 외면하기, 거친 말을 입에 담지 않기, 뒤로 물러나 앉기 등등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한 게 없었다. 산 그림자가 골짜기를 따라 내려와 절이 캄캄해지고 나서야 나는 대웅전을 나왔다. 탑을 몇 바퀴 돌고 돌아섰다. 절 마당같이 텅 빈 공간이 하나 마음에 생긴 것 같았다. 맑은 물이 돌돌 흘러나오는 샘이 하나 가슴속에 생긴 것 같았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