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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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봉환이가 구타당한 사건을 비롯해서 태호조차 시무룩해서 이상한 눈치를 보이게 되자, 변씨의 심사도 몹시 뒤숭숭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비에 흠뻑 젖은 두 사람이 좁은 마당으로 들어섰는데도 눈길 한 번 돌리는 법이 없이 줄곧 승희만을 바라보며 입에 침을 튀기고 있었다.

"하긴 농사만 벼랑 끝에 가 있는 게 아니지. 이건 엘레노이하고는 별반 상관이 없는 문제이지만, 어물시세가 폭락하고 있는 것도 지나쳐 볼 문제가 아니여. 승희도 봤지만, 생물 갈치 한 마리에 오백원, 고등어 중품 한 손에 이천원은 또 그렇다치고. 꽁치 상품 열 마리에 이천원으로 팔린다는 게 말이나 돼? 쌍팔연도 시세보다 더 싼값으로 팔린다는 것에 씨발 나는 눈물이 나.

꽁치가 어떻게 잡은 생선인데 저들 맘대로 이천원이야. 사방을 둘러봐도 눈에 보이는 것은 파도뿐인 변덕스런 한바다로 나가 목숨 걸어놓고 잡은 생물을 말인즉슨 꽁치라 부르지만, 그건 꽁치가 아니고 고통치여. 그 고통치 열 마리에 이천원이면, 십년 전 시세보다 더 헐값이란 것을 늙바탕인 나는 알고 있지만, 어느 개아들 놈이 그걸 알겠어.

허리가 꼬부라져서 콧등이 땅에 질질 끌리는 노파가 눈에 흐르는 진물을 닦아가면서 이천원에 꽁치 열마리를 팔려고 오뉴월 뙤약볕 아래에서 점심까지 굶어가며 갖은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눈물이 저절로 흘러. 오십 마리를 팔아보았자, 남는 이문이 몇 푼이나 될까. 손끝에 물이나 튀기는 젊은 것들이 노파 생선 자배기에 다가서서 꽁치 한 마리를 엉거주춤 치켜들고 이거 얼마예요 하는 걸 보면, 나는 한 주먹 콱 쥐어박고 싶어.

꽁치 값은 십년 전보다 싸졌지만 맛은 십년전 것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흡사 똥 묻은 걸레 들어올리듯 주워 들고 야살스럽게 값을 묻는 게 왜 그렇게 눈꼴에 시리게 보이는지 나도 모르겠어. 고통치가 어떤 생물인데 괄시를 해?" 그제서야 젖은 옷을 얼추 수습한 철규가 담배를 피워 물며 말참견을 하였다.

"형님 말도 그럴싸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어요. 파탄이 초읽기에 들어간 농어촌경제를 살리자는 목소리는 대단히 높은데, 내막을 알고보면 탁상공론들만 무성한 게 틀림없다는 심증만 굳어질 뿐이지요. 물론 안보다 뭐다 해서 까닭이야 있다지만, 어선들의 출항 시간을 해가 늦게 뜨는 동절기나 해가 빨리 뜨는 하절기를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새벽4시와 8시 사이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 어민들에게 큰 타격을 준다는 심각성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출 시간이 빨라진 요즈음은 꽁치나 청어나 전어 같은 생선이 성어기인데, 이들 생선들은 꼭두새벽에 조업해야만 잡히게 마련 아닙니까.

그러나 조업 나갈 어선들은 정작 출항 통제시간에 발이 묶여 뱃전가녘까지 몰려와서 소용돌이를 치는 꽁치떼를 빤히 바라보면서도 발만 동동 구르는 꼴입니다.

그뿐입니까. 섬주민들은 갑자기 환자가 발생해도 통제에 묶여 육지의 병원조차 제 시간에 찾아갈 수 없고, 조업중에 기상의 악화로 부근 부두에 피항을 하려해도 승인 절차가 까다로워 입항도 제시간에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국방이니 치안이니 명분은 있다지만, 너무나 위압적이고 획일적이에요.

도대체 높은 자리에 앉아 버티고 있는 공직자들은 춥고 더운 계절감각조차 없는 인사들이 아닙니까?" "왜 몰라. 잘 알고 있지. 씨발, 저들 마누라가 절기마다 호들갑스럽게 갈아입는 입성만 쳐다봐도 봄이 왔는지 겨울이 닥친 것인지 제대로 눈치챌 수 있을 텐데. 실성한 놈이거나 장님 아닌 이상 사계절 변하는 것을 모를 턱이 있을까.

한번 정해놓은 규정을 개칠하자면 구구절절이 구차스럽고 번거로우니까 엉덩이 밑에 깔고앉아 뭉기적거리고 있는 게야. 고관 좋다는 게 뭐야. 제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제 것처럼 유세하고 다니며 모가지에 힘주는 거 아녀. 내가 시방 오십이 넘었지만, 고개 떨구고 다니는 고관들 본 적은 없어.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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