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젊음 ② 키네틱 국악그룹 ‘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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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슬쩍 내밀며 ‘우훗∼’이라고 해야 하나요? 너무 어색해요.”

여성 7인조 키네틱국악그룹 ‘옌’은 “국악도 전통에 갇혀있는 음악이 아닌, 젊은 세대의 감성을 담아낼 줄 알아야 한다”며 국악계의 ‘장기하와 얼굴들’을 지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연출 김미소, 기획 김미린, 해금 강둘이, 대금 차정희, 피리 이샘이, 타악기 한솔잎, 가야금 남경민. [김성룡 기자]

까르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전날 비좁고 후덥지근한 연습실에서 봤던 치열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그들은 검정 혹은 흰색의 모던한 스타일 옷을 입고 “도도하고 당당한 이미지를 표출하자”며 온갖 포즈를 취했지만, 그래도 20대 여성들의 발랄함은 어쩔 수 없었다. 가져온 국악기는 고풍스런 느낌의 소품처럼 보였다.

여성 7인조 키네틱 국악그룹 ‘옌’. ‘활동적인(kinetic)’이란 뜻은 이들에겐 딱 떨어지는 맞춤정장 같다. 국악 연주에 클래식을 연결시키는 것은 기본이요, 연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예측불허를 넘은 황당함에 국악계 어른들은 “쟤들 왜 저래?”라며 걱정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정작 이들은 태연하다. “우린 외모론 ‘소녀시대’고요, 음악 스타일은 ‘장기하와 얼굴들’이에요. 너무 뻔뻔한가요, 호호.”

◆옌, 기생되다=그룹이 결성된 건 멤버들이 대학교 1학년때인 2003년이었다. 국립국악고 출신 두세명이 의기투합했다. 처음엔 “놀면 뭐해, 국악 스터디 그룹이나 만들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연출을 맡고 있는 김미소(25)씨는 “같은 학교 동기 혹은 선후배라 남들은 학연을 따진줄 알지만, 사실 우린 학창시절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어요. 철저히 실력으로만 팀을 꾸린 거죠”라고 말했다.

이듬해 정기공연을 가졌다. 실전은 그룹의 성격을 규정지어주었다. 그건 ▶기존 국악곡은 가능한 배제하고 ▶창작 국악곡을 중심으로 하되 ▶인접 예술과의 크로스오버를 꾀한다는 것이었다.

차별화는 강력한 무기였다. 그룹 결성 3년만인 2005년엔 ‘창작 국악 경연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다. 역동적인 무대를 꾸미고자 멤버들은 따로 연기 트레이닝을 받았고, 탭댄스를 익히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6년 ‘옌 기생되다’란 공연을 올렸다.

기존 국악계에선 “기생이 웬 말이냐. 국악의 품격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며 비판이 빗발쳤다. 그러나 이들은 “섹슈얼리티에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닌, 예인으로서의 기생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 것”이라며 밀어부쳤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1세기 국악을 하겠다=시도는 신선했지만 “국악·댄스·연기 등 다양한 코스 요리지만 정작 젓가락이 가는 건 없다. 컨셉트는 새롭지만, 아마추어같다”란 지적은 뼈아팠다.

‘옌’은 방향을 틀어 다른 장르 음악과의 접목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 좋다는 유명 클럽에서 특별 공연을 가지기도 했고, 힙합 DJ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맞춰 연주를 하기도 했다. 영화음악가 김현보씨와의 작업은 ‘옌’의 방향을 잡는데 결정타였다.

“클래식이나 힙합 등 대중의 귀에 익숙한 음악과 협업을 할수록 국악이 오히려 더욱 국악스러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지난 5월엔 남미 페루·볼리비아로 해외 공연을 다녀오기도 했다. 28일 CJ아지트 공연은 이들이 6년간 겪어온 시행착오와 실험의 완결판이다.

소설가 구보 박태원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각색한 내용을 바탕으로 비제잉(VJing·음악에 디지털 영상을 믹스한 것), 애니메이션이 가미된 일렉트로닉 국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국악이 고루하다는 건 편견이에요. 지금 세대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국악을 하자는 거, 저희의 존재 의의죠.” 박물관에 모셔져야 할 듯한 국악을 끄집어낸 20대 여성들의 깜찍한 도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 보인다.

최민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공연메모=‘Art Yen the City’, 28일 오후 5시 CJ아지트, 입장료 무료, 02-3272-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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