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통령만 승인하면 국회동의 필요없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헌법 소원이 제기되는 등 국민적 논란의 와중에 정부의 수도 이전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는 21일 73개 행정부 소속 기관의 이전을 확정했다. 다만 국회.대법원 등 11개 헌법기관은 해당 기관이 입장을 정할 때까지 국회 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 측 공동위원장인 이해찬 국무총리는 "(헌법 소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대략 11월께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뒤 "그 이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절차는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정부의 강행 의사를 재확인했다.

◇어디가 가고 어디가 남나=수도권 소재 국가기관은 모두 254개.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는 지난달 초 행정부 소속 74개와 헌법기관 11개 등 85개 국가기관을 이전 대상으로 잠정 분류했었다. 그러나 추진위는 이날 행정부 소속 기관 중 대검찰청은 이전 결정을 보류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대검찰청은 사법부와 업무 연관성이 크기 때문에 사법부의 이전 여부가 결정된 후에 확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결정에 따르면 대통령 비서실.감사원 등 청와대 주요 기관이 이전하고 국정원은 서울에 남기로 했다. 국무조정실 등 총리 직속 기관은 대부분 이전하고 금융감독위원회는 남는다. 대검찰청을 제외한 나머지 행정부 소속 기관은 당초 계획대로 모두 이전된다.

◇헌법기관은 스스로 판단=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는 11개 헌법기관의 이전 여부는 해당 기관의 결정에 전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이춘희 신행정수도 건설추진단 부단장은 "헌법기관의 이전 여부는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면서 "해당 기관의 입장이 통보되는 대로 국회에 동의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헌법기관의 이전 여부에 대한 입장 표명과 국회 동의 시한은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회가 결정을 미룰 경우 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결정으로 국회(입법부)와 대법원(사법부) 등이 이전 대상에서 완전히 빠지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의 잔류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정부는 여전히 이들 헌법기관의 이전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태도 변화에 대해 "천도 논란으로 신행정수도 건설 사업 자체가 발목을 잡히자 정부가 행정부 소속 기관과 국회.대법원의 이전을 분리해 수도 이전은 기정사실화하면서 천도 논란은 최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정부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헌법기관들이 이전 의사를 밝힐 경우 결국 이전 쪽으로 굳어질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국회의 동의 여부에 따라 신행정수도 건설이 천도인지, 순수 행정수도 이전인지에 대한 논란도 종지부를 찍게 된다.

◇국회 동의 배제 논란=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 관계자는 "행정부 소속 국가기관의 경우 국회의 동의절차 없이 대통령의 승인을 거쳐 이전 여부가 곧바로 확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2월 말에 통과된 신행정수도특별법이 행정부 소속 국가기관의 이전 여부는 대통령 승인 사항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정부의 사무를 일상적으로 감시.견제하는 것도 국회의 역할 중 하나인 만큼 피감기관인 행정부 소속 기관의 이전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국회의 의사를 묻지 않도록 한 것은 애당초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손성태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은 "지난해 특별법 심의과정에서 행정기관에 대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의견이 제시됐으나 국회가 법안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대통령 승인 사항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