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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 경쟁력이다] 거창 국제연극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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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오는 31일부터 열리는 제16회 거창 국제연극제를 앞두고 관계자들이 무대장치 등을 준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 지난해 연극제에 참가한 한국 극단의 ‘햄릿’ 공연 모습.

'새와 매미, 그리고 계곡물 소리가 효과음이 되고,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은 무대 장식이 된다'.

덕유산 자락 산골 오지 경남 거창읍이 연극과 바캉스를 동시에 즐기는 '문화 피서지'로 뜨게 된 이유다.

해마다 여름이면 고색창연한 서원과 물소리 시원한 계곡 정자 옆 야외무대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거창이 떠들썩하다. 올해는 계곡물 속에 몸을 담그고 연극을 볼 수 있도록 수상무대가 설치된다.

오는 31일부터 8월 17일까지 열리는 제16회 거창국제연극제에는 거창군 인구 7만여명을 능가하는 10만여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돼 거창군은 손님 맞을 채비가 한창이다.

◇대박 터뜨린 야외무대=결코 거창하지 않은 지역 연극제로 시작해 국제연극제로 발돋움하게 된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연극은 실내에서 공연하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돌담 울타리가 쳐진 돌담극장, 서원 마당, 감나무 고목이 즐비한 나무그늘 아래 등 어느 곳이든 무대가 된다. 덕유산.가야산.지리산 등 3개 명산에 끼여 있는 거창의 풍광 좋은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게 적중했다.

올해 참가 예정인 9개국 42개 극단 150편의 공연 중 한편을 제외한 149편이 모두 야외무대에서 펼쳐진다.

매년 피서를 겸해 가족과 연극제를 보러 거창에 간다는 주부 강영주(40.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씨는 "다른 피서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정겨움이 있는 데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됨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동네 연극제에서 국제무대로=거창에서 연극제가 처음 열린 것은 1989년 10월. 그러나 이때부터 97년까지는 실내 소극장에서 거창지역 10개 극단만 참여해 열린 산골의 작은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93년 5회째부터 2개 해외극단 등 12개 극단이 참가하면서 거창국제연극제로 확대됐으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수렁에 빠진 연극제를 구해낸 것은 야외무대였다.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자는 아이디어는 이종일 위원장의 프랑스 배낭여행에서 나왔다. 그는 96년 7월 프랑스 아비뇽 국제연극제를 보러 갔다.

프랑스 남동부 인구 8만의 작은 도시 아비뇽에는 14세기 때 로마 교황이 거주했던 교황청과 도시를 에워싼 성벽 등 고딕식 건물들이 즐비했다. 세계에서 몰려 온 500여개의 극단들이 고딕식 건물 사이에 자리잡은 115곳의 야외극장에서 다양한 공연을 벌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 도시가 7월 한달간 연극제 수입으로 1년을 먹고 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위원장은 "인구가 거창과 비슷한데다 거창의 고택과 누각.정자를 이용해 야외무대를 설치하면 관중의 호기심을 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외무대 설치에 대한 지역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관광지인 수승대 내 구연서원에 야외무대를 설치하려 했으나 문중 어른들이 "신성한 서원에서 깽깽이를 울릴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문중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2년 동안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아내고 98년 10회 때부터 야외무대 두곳을 마련했다. 서원과 계곡에 야외무대가 설치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해외 5개팀, 국내 8개팀 등 13개팀이 참가해 참가 극단이 예전에 비해 배로 늘었다. 지역축제의 가능성을 확인한 거창군도 가세했다. 그해 국.도비 등 1억8000만원을 처음으로 지원했다.

◇연극으로 살아나는 지역경제=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지난해 거창국제연극제를 평가한 결과 A등급(적극 지원해야 할 사업)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천혜의 관광자원과 연계돼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성공한 지역축제로 결론을 내렸다.

거창군.경남도 등 자치단체의 지원이 시작되면서 힘을 보탰다. 거창군은 여섯곳의 야외극장을 2001년 5억여원을 들여 만들었다. 지원금도 2000년 2억4700만원에서 지난해엔 3억7000만원으로 매년 늘려가고 있다.

해외 참가팀도 초기 서너팀에서 올해는 8개국 9개 극단, 국내 33개 극단 등 국내외 42개 극단이 공연을 벌여 국제행사로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됐다.

관중도 99년 2만8625명에서 지난해에는 6만3711명으로 해마다 늘어났으며 전세버스로 2박3일 동안 낮에는 주변 관광을 즐기고 밤에는 연극을 관람하는 패키지 관광상품도 운영되고 있다.

축제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 효과도 상당하다. 경남발전연구원이 지난해 연극제 기간(7월 31일~8월 17일)의 경제 효과를 분석한 결과 직접 수입은 입장료.주차료 등 2억5000여만원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 관객 6만3711명의 숙박.음식 등 관광비용을 감안하면 모두 135억원 정도의 파급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은 2007년까지 58억원을 들여 미개발된 수승대 관광지 내 1만3000평에 펜션단지.야영장.취사장.주차장 등을 만들어 연극촌 조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거창=김상진 기자<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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