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화제]동양학 연구풍토 자성의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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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구의 실용적 가치가 더욱 확고하게 자리잡아가는 상황에서 '동양학' 이 스스로를 비판.반성하면서 새방향을 모색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중국어문학회 (회장 이종진)가 계간 '상상' (살림출판사 刊).교수신문사 (사장 이영수) 와 함께 지난 13일 공동개최한 '동양학, 글쓰기와 정체성' 이라는 학술발표회가 그것. 동양철학.중국문학.동양사 관련 학자들이 대거 참석한 이날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한형조 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동양철학) 의 '근대사의 경험과 동양철학 글쓰기' 라는 자기비판적이고 고백적인 논문. 한교수는 "근대 이후 동양철학이 자생적 학문으로 주체성을 갖지 못했음에도 권력의 정당화를 위해 특별히 존중받았다" 며 "이같은 구조속에서 폐쇄적.자족적인 학문관행이 용인, 관례화되었다" 고 반성했다.

이승환 교수 (고려대.동양철학) 도 '동양철학, 글쓰기 그리고 맥락' 이라는 발표에서 동양철학이 현실과 차단한 채 고고한 관념의 유희에 빠져있거나 서구를 추종해왔다고 통렬한 자기비판을 시도했다.

동양사의 독자성도 이날의 중요한 쟁점이었다.

조병한 교수 (서강대.동양사) 는 동아시아 각국이 자국 중심의 민족사학에 집착함으로써 동양사가 독자적 역사공간으로 확보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회에서 모아진 결론은 정재서 교수 (이화여대.중문학)가 '동양학, 글쓰기 기원과 행로' 에서 "갑골문 이후 글쓰기가 학문.사상 변혁의 선구자였다" 는 지적처럼 동양학의 정체성과 현실성의 확보가 결국 새로운 글쓰기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탈식민주의가 또다른 식민주의일 수밖에 없는 문화풍토에서 새로운 글쓰기로서만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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