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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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⑥

자칫했으면 숨진 채로 발견될 뻔 했던 봉환이가 일찍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변씨의 덕택이라 할 수 있었다.

봉환이가 가게로 떠나 한 시간쯤 흐른 뒤, 변씨는 가게의 일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웃이 눈치챌 만큼 큰 소동은 없겠지만, 두 여자 사이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을 봉환의 낯짝이 몹시 궁금했었다.

그렇다고 철부지들처럼 몸소 가게로 달려가 봉환의 허파를 뒤집어놓는다는 것도 나잇값을 못한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 같아서 태호를 불러 봉환의 동태를 살펴보고 오라고 은근히 사주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여자는 가게에 있었지만, 봉환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손윗사람의 당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던 태호는 나선 김에 선착장 부근의 선술집이며 구멍가게들을 샅샅이 뒤졌으나 봉환의 모습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때부터 머리속이 뒤숭숭했던 태호가 자취방으로 달려가 봉환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한 것은 잔심부름으로 해안도로의 구멍가게와 집 사이를 들락거렸던 형식이었다.

초저녁부터 골목어귀에 서성거리고 있던 낯선 두 청년의 모습이 한 시간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라진 두 사내와 행방이 묘연해진 봉환이 사이에 어떤 단초가 연결되어 있으리라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태호는 달랐다.

그에게는 밑바닥 생활로 단련시켜온 예민한 촉각이 있었다.

난데없는 테러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오싹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앉아 있을 수 없었던 태호는 형식을 동행해서 다시 집을 나섰다.

일단은 봉환이가 테러를 당한 것으로 단정하기로 했다.

차로 실어 갔다면 주문진 교외로 빠져 나갔을 것이고, 차가 없었다면, 선착장 부근의 호젓한 장소로 끌려갔음직하였다.

그러나 테러범들에게 차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선착장 근처에서 테러당하기 맞춤한 장소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 장소라면, 태호보다는 형식이가 능숙한 편이었다.

그러나 봉환을 찾아낸다는 것은 작지 않은 해안도시인 주문진에선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였다.

거의 세 시간 이상을 가게의 동정까지 은밀히 살펴가면서 뒤져볼 만한 곳은 거의 찾아보았다. 그러나 봉환을 발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때가 벌써 밤12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그제서야 자취방에 있던 철규와 변씨가 합류했다.

공한지에서 봉환을 발견한 것은 새벽2시. 그가 사내들에게 끌려나온 이후 6시간이나 흐른 뒤였다.

숨이 끊어질 정도로 비관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봉환의 코와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장 눈에 띄는 외상이 없음에도 피가 흐른다는 것은 내출혈이 있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병원 응급실로 옮겨 놓은 이후부터 몸도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햇내기로 보이는 젊은 의사는 외상도 없이 골병이 든 환자를 다뤄본 경험이 없었던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큰 병원으로 데려가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의사를 안심시키려 애쓰는 사람은 오히려 변씨였다.

봉환을 응급실에 옮겨놓은 다음에야 승희를 불렀다.

네 사람의 동업자들은 병원건물 현관 밖으로 나와서 비로소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때 변씨는 궁금했던 질문을 태호에게 던졌다.

"태호 자넨 알고 있지?" 태호가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철규가 대답을 가로챘다.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 태호가 모르겠어요. 그러나 구태여 묻지 않는 게 좋겠어요. " "물론 짐작은 가지만,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야. " "신고라도 하고 싶으세요?" "신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긴 하구만. 하지만, 민중의 지팡이 부러진 지가 고려시대부턴데, 미련하게 신고를 해?"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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