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재정적자, 편법 아닌 정석대로 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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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정부가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대형 에어컨·냉장고 등에 개별소비세(옛 특별소비세)를 부과할 모양이다. 또 술·담배의 세율을 올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정부는 에너지 절약과 환경친화적인 녹색성장을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군불 지피기로 여겨진다. 그제는 ‘중기(中期) 국가재정 운영 토론회’도 열렸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우리는 큰 폭의 재정적자를 피하기 어렵게 돼 있다.

세계는 지금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경기 침체와 싸우면서 빚과의 전쟁도 한창이다. 글로벌 위기를 맞아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나라 살림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재정적자가 지나치게 팽창하면 시중 금리가 오르고 경기 회복에도 찬물을 끼얹는다. 영국과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재정적자로 국채 발행을 못해 국가부도 위기에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은 고소득층의 감세 혜택을 줄이고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영국과 독일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기로 했고, 일본은 소비세율(한국의 부가가치세)을 매년 1%포인트씩 높이는 방안을 마련했다.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대로 우리도 재정적자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 개별소비세를 찔끔찔끔 매기거나 할당관세를 없애는 땜질식 처방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효과는 없고 세제만 누더기로 만들 뿐이다. 정부는 이미 세워놓은 세제개편의 대원칙으로 돌아가는 게 옳다고 본다. 우선 지나치게 많은 비과세·감면 대상부터 축소해야 할 것이다. ‘낮은 세율, 넓은 세원(稅源)’의 조세정책 기본 원리와도 부합한다. 직접세는 놓아두고 상대적으로 거두기 쉬운 간접세만 자꾸 올려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차라리 일반세를 늘려야지 특별한 용도의 목적세를 남발해서도 안 된다. 재정적자 같은 어려운 문제에는 꼼수나 편법보다 정석으로 풀어야 한다. 그래야 증세에 따른 반발을 줄이고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