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만에 입는 웨딩드레스

중앙일보

입력

39년만에 입는 웨딩드레스
“여보, 오랜 세월 고생만 시켜 미안하오” 고맙소

“리마인드 웨딩 캠페인이라!” 신문을 보던 김경태(31)씨의 머릿속엔 한 장의 결혼식 사진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지금의 아내 한수정(29)씨와의 결혼 허락을 받고 결혼을 준비하던 때다. 당시 한씨의 집에서 앨범을 보다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장인 장모님의 결혼사진이었는데 몸과 얼굴이 따로 노는 듯 어색했다. 장모님은 합성사진이라 했다. 전통혼례를 치러 웨딩드레스를 입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던 차에 사진관에서 신식 결혼식을 올린 것처럼 해준다기에 한장 마련하셨던 것이다.
 
김씨는 신문을 덮고 아내와 의논했다. “자식들이 하자고 해도 분명 안 하실텐데. 어떡할까?”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응모부터 했다. 그런데 의외였다. 당첨된 것도 의외였지만, 당첨소식을 알리자 처음엔 장난으로 알던 장인·장모님도 나중엔 진지하게 응하셨다.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잘했다는 생각과 더불어 여태껏 못해드린 죄송함이 밀려들었다. 어머니 조기호(63)씨의 웨딩드레스는 재클린 케네디가 예복으로 자주 입어 유명해진 일명 ‘재클린 스타일’. 미카도 실크 소재에 H라인에서 살짝 벌어지는 정도의 웨딩드레스다. 웨딩트리의 정영화 원장은 “칠부소매와 보트넥 라인, 짧은 베일에 진주목걸이로 앤티크한 느낌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예쁜 모습의 엄마는 처음이에요.” 큰 딸 한주영(34)씨는 어머니의 첫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에 눈물을 보였다.
 
어머니의 드레스와 어울리게끔 아버지 한종대(67)씨 역시 화사한 예복으로 골랐다. 마에스트로의 레드컬러 체크 셔츠에 베이지색 재킷을 입고 보타이를 매치한 복고풍 정장이다.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선 부부. 예쁘다, 혹은 멋지다는 칭찬 한 마디 서로 못 건네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막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의 수줍은 모습이라면 과장일까. 올해로 결혼한지 39주년. 1년만 있으면 벽
옥혼식이다. 조씨는 태안 시내에서 택시기사에게 “조○○네 갑시다!” 하면 다 알아주는 부잣집 셋째 딸이었다. 맞선을 보고 집 앞에서 헤어지던 무렵. 뉘엿뉘엿 지는 저녁놀이 만들어낸 남편의 실루엣에 반했다는 이야기에 딸들은 “소녀 같다”고 놀렸다. 그 뒤로 엄마는 쓸쓸한 남자의 뒷모습과 반반한 얼굴에 속지 말라며 딸들에게 충고했단다.
 
결혼생활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넉넉지않은 집에 시집 간 까닭에 살림에 보태기 위해 결혼반지를 금은방에 판 이후로 35년 동안 조씨는 손이 예쁘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반지 끼길 거부했다. 세월에 늙고 고생으로거칠어진 아내의 손에 예쁜 반지 하나 끼워주지 못해 늘 미안했다는 남편 한씨. 준비된 반지를 아내에게 끼워주면서도 듣기 좋은 말한마디 건네질 못한다. 그저 미소로 대신할뿐이다. 무뚝뚝하고 말을 아끼는 남편이라 섭섭할때도 많았다. 그 얘기를 할라치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이다. 남편이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가겟일에 살림·육아·남편 뒷바라지까지 도맡아야했던 나날을 떠올리면 지금도긴 한숨이 나온다. 그런 까닭에 조씨는 “아버지(남편)가 건강한 것이 최고”라고 자식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이미 결혼한 두 딸과 올 가을 결혼을 앞둔아들…. 번듯하게 잘 자라준 삼남매와 든든한 남편이 있으니 이젠 바랄게 없단다. “그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요.” 조씨의 바람이다. 한씨는 자신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쓴 아내가 안쓰러웠는지 “내가 건강해서 보답할게. 앞으로 행복하게, 그렇게 살자”고 다짐한다.
 
마지막은 가족사진 찍을 차례다. 한씨 부부를 비롯해 리마인드 웨딩 사연을 올린 둘째 딸 수정씨와 사위 김경태씨, 손녀 민지(3)와 8개월된 손자 영찬이, 그리고 큰 딸 주영씨와 손자 추성민(3), 아들 석중(33)씨가 한데 모였다. 큰 사위 추지웅(37)씨와 큰 손녀
추은민(8), 그리고 예비 며느리가 사정상 빠졌지만 이렇게 온 가족이 모인 건 참 오랜만이다. “자, 이제 찍습니다!” 한씨 가족 3대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협찬 및 캠페인 지원=LG마에스트로, 스타일
러스 by 골든듀, 웨딩드레스=웨딩트리, 헤어&
메이크업=애브뉴준오, 웨딩스튜디오=비쥬바이진스(신호식 실장)

이세라 기자ooooo@joongang.co.kr
사진=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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