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호선교'로 통일물꼬 튼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김대중대통령은 지난 10일 미국 의회연설에서 북한문제를 언급하면서 "상대방의 코트를 벗기는 데는 바람보다 햇볕이 더 효과적" 이라는 이솝우화를 인용해 미국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최근 종교계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남북한 교류도 그런 햇볕에 해당함에 틀림없다.

올해 들어 종교계의 최대 사업으로는 단연 남북교류가 꼽힌다.

올해만 종교단체들이 일곱 번이나 북한을 방문했다.

그동안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을 지원하거나 평화통일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교단은 개신교. 개신교 주요 교파연합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 의 경우 지난달 26일부터 6월1일까지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 남북분단 후 최초로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화합을 이룩해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나간다" 는 '합의문' 을 이끌어냈다.

또 오는 22일에는 또다른 개신교 연합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지덕 대표회장 등 대표단 8명이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에 교회 및 기독교수양관 복원.국수공장 설립.식량지원 등을 논의한다.

개신교에서는 이들 단체 외에도 한국대학생선교회 등 선교회나 교회 단위로도 북한 방문이 추진되고 있다.

천주교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최창무 주교.오태순 신부 등 7명이 지난달 15일부터 8일간 북한을 방문해 평양 장충성당에서 남한 주교로는 처음으로 미사를 올리기도 했다.

천주교에서는 북한의 나진 선봉지역에 외국 단체의 이름으로 의료기관 건립도 추진 중이다.

불교측 교류도 꽤 활발하다.

지난 3월에 남북한 불교 관계자들이 베이징에서 만난 결과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는 남북한 사찰에서 똑같은 시간에 종소리를 울리고 같은 내용의 발원문을 봉독했다.

또 8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관음사에서 남북불교대표자들이 자리를 함께 하는 조국통일기원법회도 열린다.

이런 종교계의 남북교류의 특징은 초기에 목표로 잡았던 선교보다는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주민을 돕는 구호활동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교류 초기에 남한의 종교계가 현실적으로 북한선교가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북한을 다녀온 종교인들은 한결같이 북한당국자들이 종교를 보는 시각에 실망감을 금치 못한다.

북한이 자랑하는 사찰인 묘향산 보현사에서 그런 인식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사명대사가 수도 (修道) 한 곳으로도 유명한 이 사찰을 찾았을 때 일요일이었는데도 경내에는 스님 두 명에 신도들의 발자취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눈으로 목격하고는 선교문제를 끄집어 내기가 어렵더라는 것이 관계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 종교인들에게는 '땅 위의 물건을 얻기 위해서 몸을 굽히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리고 우리 시각에서는 종교계의 교류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꽤 민감하다는 사실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의 불교측 대표인 한 스님이 "북한의 아사자 (餓死者)가 3백만명에 이른다" 는 발언을 했다가 북한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갈수록 더해가는 종교계의 남북교류가 남북평화통일의 물꼬를 트게 될지 관심의 대상이다.

정명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