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락가락 아프간 파병 논의 혼란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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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에 관해 한·미 정상 간에 논의가 있었단 소린가, 없었단 소린가. 그때그때 말이 다르고, 왔다 갔다 하니 혼란스럽다. 아프간 파병은 국민의 목숨과 직결된 민감한 문제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참모의 설명이 다르고, 같은 얘기를 놓고도 사람에 따라 말이 달라지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청와대 측은 “아프간 파병 문제는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대표 회동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아프간 파병 문제에 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청와대가 사실을 숨겼단 얘기다. 정상 간에 오간 대화 내용을 놓고도 혼선이다.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정치현실에 비춰볼 때 파병 요구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다만 한국 정부가 스스로 결정해주면 모르지만…’이라고 얘기하더라. 그래서 오히려 조금 미안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측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파병을 요청했고, 이 대통령은 전투병 파병은 불가능한 만큼 평화유지군 방식의 파병을 고려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즉각 “이 대통령은 평화유지군이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전 정부 때의 평화사업과 재건사업을 조금 확장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파병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정부가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해된다. 그러나 미루거나 숨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처럼 혼선이 거듭되면 막상 어떤 결정을 했을 때 국민적 공감을 얻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아프간 파병 자체는 명분 없는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대(對)테러전에 동참하는 것이다. 현재 41개국이 5만5000명의 병력을 보내놓고 있다. 우리도 300명의 의료·공병 병력을 보냈다가 인질 사태를 계기로 철수했을 뿐이다.

국민 여론 때문에 정 안 되겠다면 이미 밝힌 대로 민간재건팀(PRT) 파견 규모와 재정지원을 확대하는 선에서 정리하는 것도 한 방안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솔직하게 밝히고, 국민을 설득하는 당당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