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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대한문 앞 분향소 ‘상주’가 철수해 달라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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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전날 내린 비가 화창화게 갠 휴일을 맞아 고궁을 찾는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는 썰렁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주세요. 분향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푯말이 무색했다. 수많은 시민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분향을 하고, 오열하던 20여 일 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분향소를 관리하는 측은 “요즘도 매일 3000~4000여 명이 조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이 집계한 최근 조문객 수는 하루 기준으로 40~80여 명 수준이라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추모객이 계속해 줄자 민주당 소속의 백원우 의원이 최근 분향소를 찾았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비서 출신으로 지난달 29일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사과하라’고 소리를 질렀던 장본인이다.

백 의원은 분향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다음 달 10일로 예정된 49재가 전국 사찰을 중심으로 진행될 계획이니 이제 분향소를 철수할 시점이 된 것 아니냐”며 완곡하게 철거를 요청했다. 그의 요청은 노 전 대통령 유족과 비석 및 유골안장식 등을 맡았던 ‘전례(典禮)위원회’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추모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계속될 경우 고인의 뜻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유족의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15일에는 보수우파 시민단체 회원들이 ‘분향소를 철거하겠다’며 몰려와 한바탕 몸싸움을 벌였다. 자살한 강희남 범민련 초대 의장이 유서로 남긴 ‘제2의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현수막이 관할 구청에 의해 철거되는 일도 있었다. 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 사건 때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한 분향소 천막도 함께 들어서면서 노 전 대통령 측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을 우려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분향소 측은 “시민 절대 다수가 분향소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인 만큼 49재까지는 분향소를 계속 운영하겠다는 뜻을 노 전 대통령 유족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시민 절대 다수의 의견’을 어떤 식으로 청취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들이 유족들의 요청을 거절할 만큼 분향소를 이어가야 할 명분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충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