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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민석칼럼

‘노무현이라서’‘이명박이라서’ 싫은 사회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2009년 5월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이었다. 낯선 이들로부터 e-메일이 여러 개 왔다. 거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로 칭하는 사람들이었다. 욕설로 도배된 내용이었다. 기자의 조상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욕을 퍼부은 내용도 있었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노무현스러움은 결벽증…원칙 어긋나면 못 참아’(5월 24일자 8면) 제하의 글이었다. 결벽증(깨끗함에 대한 집착)이란 단어가 문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자가 환자로 몰았다는 주장이었다.

정치인에게 결벽증이 있다고 하면 그게 폄하일까 미화일까. 어느 쪽도 염두에 두지 않고 쓴 글이었지만, 그렇게도 해석될 수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이른바 중앙·조선·동아일보 기자들에게 욕설 메일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반문을 던지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결벽증이 있다”는 기사가 있다면 이 대통령을 깎아 내리는 것으로 생각이 되느냐고. ‘바보’ 노무현이라고 부르는 건 폄하하기 위함이냐고.

#2009년 6월 11일.
지금은 정계를 떠난 언론인 출신 K씨가 점심 식사 자리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처칠 총리와 노동당 당수 애틀리가 화장실에서 만났다는 거요. 근데 처칠 총리가 애틀리를 멀찍이 피해서 볼 일을 보더라는 거지. 애틀리가 왜 피하느냐고 물으니까 처칠이 이랬데요. ‘당신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려 하니 도망갈 수밖에…’.”

단순히 웃자고 K씨가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참 멋과 여유가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정치 풍토가 너무 살벌해.”

실제로 그렇다. 한국 정치에선 유머는커녕 정적을 아예 밟아 버리지 못해 안달이다. 상대방을 향한 비난이 인격모독 수준은 한참 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에서 87세 고령의 심신허약자로 묘사됐다. 민주당에선 ‘MB악법’이 보통명사가 돼 버렸다. 급기야 ‘살인자 리명박’ ‘이명박 XXX’란 섬뜩한 용어까지 등장했다.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까지 미워할 수도 있었다.

#2009년 6월 18일.
40대 후반의 자영업자 P씨와 만난 자리에서 우연찮게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부동산 정책이 화제로 올랐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 갖고 얼마나 욕했어요? 아무튼 그 시절 DTI(연간 부담하는 금융비용이 연소득의 얼마에 해당하는지를 말하는 비율)를 강화해 금융대출을 막았는데, 제 주변에 그때 대출 받으려다 막힌 사람이 여럿 있어요. 그 사람들이 지금 다 고마워해요. 그때 집만 사면 오른다고 해서 담보대출 받아 막 부동산 사 제낄 때였는데…막지 않았으면 우리나라도 미국 같은 상황(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이 왔을지 누가 알아요.”(P씨)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때요. 종부세 완화부터 해서 ‘있는 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많은데.”(기자)

“있는 사람들이 지갑을 풀어야 돈이 돌지. 지금은 또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그들이 돈을 써야 건설 경기가 풀리고, 일용직 고용도 늘고, 술집도 되고, 미용실도 되고, 택시도 장사 되고. 그걸 단순히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나요.”(P씨)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책이란 게 다 양면성이 있는 건데, ‘이명박이니까’ 싫다는 사람들이 요즘 너무 많아 보여요. 노무현 시절도 그랬지만.”

# 대한민국에서 6월 나기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사건들은 유독 6월에 몰려 있다. 6·6, 6·10, 6·15, 6·25에 6·29까지. 6·10이나 6·15, 6·25가 어느 한 세력만의 기념일이 되어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한 달 내내 한 번은 보수세력이, 한 번은 진보세력이 깃발을 들곤 하는 형국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양 진영에서 키워온 건 서로에 대한 냉담과 증오다. 한국에서 6월 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칼 마르크스가 남긴 유명한 테제이지만 한국에선 증오의 의식이 오히려 존재를 규정하는 것 같다.

“증오는 인생을 혼란시키지만 사랑은 인생을 조화시킨다”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은 한국 사회에선 보수· 진보 양쪽에 모두 유효한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뜨거운 6월’을 헤쳐 오는 동안 얻은 느낌은 이제 ‘어떤 말을 하는지’보다 ‘누가 말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듯하다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한쪽에서 “당신이 옳다”고 해도, 다른 쪽에선 “뭐가 옳으냐”고 화를 낼지 모른다.

강민석 중앙SUNDAY 사회탐사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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