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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경제 이렇게 풀자]신기술 집중투자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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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세계 처음으로 생산한 2백56메가D램 반도체 수출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양산 (量産)에 들어가기 전 샘플생산에 불과하지만 IBM 등 메이저 컴퓨터업체들이 주문을 늘리고 있어 올해 1천억원의 수입이 예상된다.내년초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면 향후 1년 동안 시장을 선점할 수 있어 '효자상품' 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LG화학은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신약 제조기술을 개발해 돈방석에 올랐다.

지난해 퀴놀론계 항생제를 합성할 수 있는 신물질을 개발, 다국적 제약회사인 스미스클라인비첨사에 제조기술을 넘기는 대신 2000년부터 20년간 연간 3천2백만달러의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기업들은 이처럼 끊임없이 기술개발을 통해 새 상품을 개발하거나 새 산업을 일으키지 않고선 생존할 수 없다.

특히 현재 주축이 되고 있는 자동차.반도체.조선 다음의 수출산업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차세대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생명공학.신소재 등 미래산업은 막대한 연구 개발 투자비가 들어가는 만큼 위험부담도 크게 마련이다.

특히 최근들어 기술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오늘 개발한 신제품이 바로 사장 (死藏)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 전자업체들이 막대한 투자비와 인력을 들여 개발한 아날로그 방식의 고선명 (HD) TV가 디지털TV 개발과 함께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제품으로 전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주어진 여건을 십분 활용하면서 미래의 '뉴비즈니스' 를 만들어가는 게 최선의 방안이다.

전문가들은 최근들어 위축되고 있는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가전과 같은 산업도 한번 더 우리 경제를 살찌울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 업종에서 과잉투자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구조조정과 원가절감 등을 통해 몸매를 가다듬으면 기회는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대만이 올해 70억달러를 쏟아부으며 메모리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서는 것도 한국 반도체산업의 '약세' 를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우리 업체가 주도권을 계속 쥐느냐 빼앗기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

기존 산업에 아이디어와 마케팅 능력을 강화해 훌륭한 수출제품으로 꽃피운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래산업과 텐트업체 ㈜진웅의 경우 국내 반도체기술과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고무보트 업체인 우성아이비는 선진국 업체들을 따돌리고 세계 보트시장의 기린아로 성장했다.

'재래산업' 도 하기에 따라 달러박스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기존 산업이든, 미래의 신산업이든 2~3개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한국이 최고라고 인정받는 산업을 키워야 한다.

네덜란드 꽃산업의 경우 특별한 설비 없이도 종자개량과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한해 수백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우주항공 등 첨단산업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도 농업 (와인 등) 분야에서 수백억달러를 번다.

우리가 키워야 할 미래산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점치기 어렵다.

현재 우리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산업일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분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세계시장의 어떤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책보따리를 들고 산에 들어가 고시나 영어공부에만 매달리는 안이한 풍토 아래선 미래 산업이 움틀 수 없다.

뉴욕 타임스지는 미여자프로골프 (LPGA)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박세리를 가리켜 '가장 손꼽히는 한국의 수출상품' 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선진국에 비해 선수층이 턱없이 얇고 골프산업 기반도 부족한 상태에서 가장 효율적인 투자를 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골프는 이른바 '첨단산업' 이 아니다. 하지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박세리처럼 한국경제의 규모와 실력 등을 감안해 세계 최고의 수출산업을 육성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각 기관이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미래산업이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 벤처산업 육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농업.섬유 등 모든 산업분야에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력과 창의력이다.

고윤희 기자

◇도움말 주신분

백만기 (白萬基)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이희범 (李熙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한국과학기술원 김영배 (金榮培) 교수. 오상봉 (吳相奉)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천식 (禹天植)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온기운 (溫基云)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신현암 (申鉉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김주형 (金柱亨)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1실장. 신후식 (申厚植) 대우경제연구소 국내경제팀장. 최봉 (崔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김견 (金堅)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산업1팀장.김선홍 (金鮮烘) 발명진흥회 연구실장. 신화용 (申和容) 산업기술진흥협회 진흥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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