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13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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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때까지 눈을 감고 있던 봉환은 다시 눈을 떴다. 어느덧 달빛이 방안으로 새어들고 있었고, 그녀의 그림자가 벽에 어른거렸다. 방아를 찧듯 위로 솟구쳤다 비틀며 아래로 가라앉는 동작의 윤곽이 그림자에도 확연하게 잡혀왔다.

드디어 타성에 젖은 동작이 반복되면서 견딜 수 없었던 봉환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일어나 앉았다. 묵호댁은 그의 하복부를 파고들 듯 훨씬 가까이 밀착되었고, 하복부의 만족스런 질량감은 명치 끝까지 차올랐다.

그는 깍지 낀 두 손으로 그녀의 잔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단내가 훅훅 풍기던 입에서 만족스러움에 겨운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의 두 손은 벌써 여자의 볼기짝에 있는 비역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묵호댁은 비로소 간곡하게 소망하기 시작했다. 물론 언어로서의 소통력을 가진 말은 아니었지만, 봉환은 그녀가 소원하고 있는 것을 익숙하게 눈치챌 수 있었다.

엉덩이에 깔았던 홑이불은 그들의 뒤채이는 몸부림 때문에 방 가녘으로 밀려나 있었다. 땀방울로 젖은 방바닥에 살갗이 아드득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묵호댁의 잘록한 잔허리가 활처럼 휘고 있었다.

하반신은 봉환의 하복부 아래로 잔뜩 밀착 시키고 있었지만, 상반신은 한껏 뒤 쪽으로 젖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만하기는 하였지만, 탄력은 없었던 그녀의 젖무덤은 고무풍선처럼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골곡의 꼭지점에 매달린 유두는 금방 무엇을 뿜어낼 듯 긴장되어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드디어 물에 빠진 아이처럼 헉헉거리며 몰아쉬는 숨소리가 새어나기 시작했다. 봉환은 그녀를 밀어내는 듯 끌어안았다. 그리고 후딱 체위를 바꿔 묵호댁을 맨바닥에 가로 눕혔다. 주문한 적도 없었지만, 그녀의 두 다리가 천장을 향해 브이자를 그리며 높이 쳐들렸다.

모이고 흩어지는 변화는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더욱 격렬해졌다. 그러나 묵호댁은 때때로 느닷없이 동작을 멈추고 방안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는 듯 조용할 때도 있었다. 본래 움직이고 조용한 것은 끝나고 시작하는 단초이며, 변화하거나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문이라 하였다.

움직임도 조용함도 모두가 생겨남의 단초가 된다는 지적은 음양오행론에도 있는 말이었다. 음양이 번갈아 작용하고 낮과 밤이 서로 도우는데, 낮에는 해가 양을 행하고 밤에는 달이 음을 행한다고 하였다.

달빛을 받은 묵호댁의 충동적인 발작도 여자에게 부여된 생명력의 단초와 무관치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양은 음에서 길러지고 음은 양에서 밝음이 생성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람에게 양은 신장에 감추어져 있고, 음은 뇌에 잠겨 있다고 했으므로 묵호댁의 발작적인 감창소리는 뇌에 박힌 밝음을 밖으로 토해내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나이가 늙어감에 따라 화기가 위축되어 음양이 흩어지려 하면, 양은 위로 올라가고 음은 아래로 내려간다 했다.

신장에 양기가 빠지면 다리에 힘이 없고, 뇌에 음기가 빠지면 눈이 희미해진다. 그래서 남자가 늙으면 잔소리가 많아지고, 여자는 눈부터 쇠퇴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음양이 때맞추어 교접하지 않으면, 남자는 더욱 잔소리 많아지고, 여자는 더욱 허리가 꼬부라지고 눈앞의 사물은 멀어져만 가는지도 몰랐다.

사십대 중반의 묵호댁에게는 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이 있었고, 그 불안감이 그녀로 하여금 더욱 저돌적으로 잠자리로 탐닉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묵호댁은 자신이 살아 있음의 확인을 봉환과의 교합으로만 확연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어느덧 콧등에 화톳불을 담은 것같이 화끈하고, 열 개의 짧은 발가락에도 기가 넘쳐 아득하게 느껴지는 한 순간이 지나가고 난 뒤 비로소 두 사람은 서로 떨어졌다.

묵호댁은 역시 승희가 쓰던 화장수건으로 봉환의 질척한 사추리를 알뜰하게 닦아주었다. 젖은 살갗 위로 달라붙어 누웠던 체모들이 곤충의 더듬이처럼 미세하게 몸을 일으켜 세우는 촉감을 느끼고 있던 묵호댁은 느닷없이 방귀를 북 쏟아놓으며 뇌까렸다. "엇따. 속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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