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유권자 절반이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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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민주주의의 풀뿌리가 고사 (枯死) 위기에 처했다.

6.4지방선거의 투표율이 오후6시 마감 결과 51.5%로 전체유권자의 절반을 간신히 웃돌아 역대 최악의 '주권 포기' 현상이 빚어졌다.

이같은 투표율은 지난 95년 6.27선거때의 68.4%보다 17%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또 상당수 유권자들이 의회의원의 경우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투표하는 기형적인 주권행사도 나타났다.

이같은 사태는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속에서도 정치권이 발목잡기.흠집내기 등으로 일관해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그런 가운데서도 개표가 시작되자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결과가 앞으로의 정국에 미칠 영향 등을 점치며 밤늦게까지 TV앞에 앉아 개표결과를 지켜봤다.

◇ 기권사태 = 중산층과 젊은층의 기권이 늘어난 가운데 신 (新) 정치1번지로 불리는 서울강남이 전국 최하위의 투표율을 보였다.

강남갑선거구는 이날 오후6시 마감결과 30.6%의 투표율을 기록해 유권자 3명중 1명만 투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날 서울시내 극장가.유원지 등에는 투표를 포기한 20~30대 인파로 북적였다.

본사 취재진이 서울종로구 S극장 앞에서 20대 1백명을 상대로 투표참가 여부를 확인한 결과 35명만이 "투표했다" 고 응답했다.

김승환 (金勝煥.29.회사원) 씨는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정치판에 신물이 나 기권했다" 고 말했다.

이같은 기권사태는 기초의원 19.7%와 광역의원 8%가 무투표로 당선이 확정되고 기초단체장 23명과 전남.북지사가 상대후보 없이 선거를 치른 데다 지역주의현상이 여전한 것도 요인으로 지적됐다.

공선협 박성규 (朴聖圭) 사무총장은 "지난 대선 이후 IMF사태에 따른 경제위기로 전국민이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나 정치권은 비전 제시보다 발목잡기로 실망만 안겨줬고 선거전도 상호비방과 흠집내기로 일관돼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것" 이라고 말했다.

◇ 개표 = 전국 3백20개 개표소에서 오후7시쯤 광역.기초단체장부터 일제히 개표작업에 들어갔다.

개표 초반 일부 시.도에서 근소한 차이의 선두다툼이 이어지자 후보측마다 손에 땀을 쥐기도 했으나 KBS.MBC.SBS 등 방송3사가 투표마감 직후 일제히 당선자 예측방송을 해 격전지역을 제외하고는 차분한 개표 모습을 보였다.

낮은 투표율 때문에 개표도 빨라 오후10시를 전후해서는 16곳의 광역단체장과 2백32곳의 기초단체장 당락이 대부분 판가름났다.

◇ 투표 =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홍보 부족 등으로 투표 직전 후보를 확인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투표장마다 선관위가 발송한 선거공보물을 들고 오거나 투표장 근처의 벽보를 보고 후보를 선택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날 오전7시쯤 서울송파구 대학학원에서 투표한 회사원 李모 (37) 씨는 "서울시장과 구청장만 누군지 알고 찍었다.

시의원.구의원은 누가 출마했는지 몰라 투표 직전 벽보를 보고 지지후보를 결정했다" 고 말했다.

박종권.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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