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바란다]“어떻게 일궈낸 본선행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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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좌절과 실의에 빠져 번민하는 젊은이들은 곧잘 우리 바다 동해를 찾아간다.

동해의 아침은 심장처럼 펄펄 뛰는 붉은 태양이 솟구쳐 가슴에 안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잠깨어 새벽에 일어나 지표를 뚫고 솟구치는 아침의 태양을 맞이할 때 가슴에 고동치는 몽환적인 팽만감을 우리의 젊은이들은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천만년을 살아도 지치지 않는 그 발군의 에너지는 언제나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율시켜 포효하게 만들었다.

날마다 붉은 태양이 뜨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나라에 우리가 살듯 날마다 우리를 열광케 하는 축구가 또한 우리에게 있어 행복하다.

언제나 혼자 일어서는 데도 거센 파도에 휩쓸리지 않았으며, 여름의 광풍에도 후퇴하지 않았으며, 먹구름에 덮여도 추락하지 않고 오직 장렬하게 솟구치며 순식간에 대지를 점령해버리는 태양의 능숙한 순발력과 단호한 대담성, 유쾌하면서 정교한 역동성을 사랑하듯 우리 모두가 우리의 축구를 사랑한다.

그들의 승리는 우리들 가슴에 만연돼 있는 갈등과 증오와 반목을 일거에 휩쓸어 잠재우고 상승의 떨림과 울림으로 바꿔 우리를 가차없이 열광케 하였다.

그처럼 우리들에게 삶의 유장한 열정을 불어 넣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축구팀이 드디어 월드컵 본선의 장도에 오른다.

우리의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오르기까지 치러낸 역경을 우리 모두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그 숱한 장애물과 수렁을 오직 일관된 투지로 극복하고 이겨온 것도 우리는 함께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축구는 어쩌면 좌절과 실의의 수렁에서 유령처럼 살았어도 자신을 연소시켜 극복해온 우리 민족의 고난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어느 경기 종목보다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고 열광하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

높은 하늘, 대기와 대기가 서로 마주치는 그곳, 그 높은 곳에 오만한 한국의 축구가 자리잡을 것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는 벌써 심장의 투명한 박동을 귀로 들을 수 있으며 왜곡되고 부박한 삶에 한 줄기 빛이 깃들이고 있음을 감지한다.

어린 시절 우리들의 입에 회자되었던 대한남아라는 한마디를 장도에 오르는 축구선수들에게 드리고 싶다.

과욕을 부리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모든 역량들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소진되는 경기를 치렀다면 여한을 두지 않는 게 우리들의 도리이고 자세다.

그러나 한번의 승리라도 있다면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들의 침울한 삶에 날개를 달아주며 우리 어두운 진상들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채찍이 된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자. 그러나 떳떳하지 못한 승리는 폭력에 불과하며 탐욕이 앞섰던 승리도 치욕스런 패배와 다름 아닌 것을 잊어버리지 말자.

김주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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