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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직접 쓴 한글문집 발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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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선시대 왕의 한글문집이 처음 발견됐다. 이제까지 알려진 정조.영조등의 문집은 모두 한문으로 돼있으나 이번에 익종 (翼宗.1809~30) 의 한글문집인 '학석집' 이 처음으로 나와 국문학계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이종묵 (李鍾默) 교수는 국학진흥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장서각 (藏書閣) 의 고문서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올해 익종의 한글문집을 비롯 한문문집과 순조 (純祖) 의 한문문집, 한글소설 '현몽쌍룡기' '화산기봉' 등 모두 14책을 찾아내 영인본으로 펴냈다고 1일 밝혔다. 익종은 순조의 아들로 대리청정 4년만인 1830년 2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고 뒤를 이은 헌종 (憲宗) 이 시호를 추숭 (追崇.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자에게 훗날 제왕의 칭호를 올림) 해 익종 또는 효명세자 (孝明世子) 로 불려왔다.

익종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으나 역대제왕중 가장 많은 4백여편의 시를 남길 만큼 시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이번에 장서각에서 발견된 한글 '학석집' 은 익종의 한문문집인 '학석집 (鶴石集)' 에 수록된 한시 (漢詩) 의 일부를 언해해 1백15쪽으로 구성한 필사본. 구 (舊) 장서각의 화재로 일부가 훼손됐지만 대부분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위쪽에 한시의 음을 한글로 적고 아래쪽에 이를 언해한 형태로 돼있다.

문집 제목인 '학석 (鶴石)' 에 대해 익종은 '학석집' 서문에서 "학과 돌같은 자연물이 시의 가장 중요한 질료" 라며 자신의 호가 '학석' 이라고 밝히고 있다. 李교수는 " '학석집' 의 언해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당시 궁중에서 한글을 익히는 공주들을 위해 익종이 직접 자신의 시를 언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건국대 김일근 (金一根.국문학) 명예교수는 "민간에서 고전의 명시들을 언해한 책은 일부 전하지만 왕의 시를 언해한 것은 처음으로 국문학적 가치가 높다" 고 평가했다. 한편 93년부터 국학진흥연구사업을 펼쳐 지금까지 40여권의 고문서를 발간한 정신문화연구원은 익종의 한글문집 간행을 계기로 앞으로 장서각에 소장된 한글역사서인 '됴야회통' '조야기문' 등 방대한 한글자료의 영인본을 계속 간행할 예정이다.

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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