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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선 나, 절집에서 나를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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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전남 해남의 미황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여성이 사찰에서 책을 보고 있다. 템플스테이는 산사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하다. [해남 미황사 제공]

휴가의 의미가 뭘까. 사람들은 “재충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맞아 휴양지로 떠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휴가가 끝나갈수록 불안해지는 마음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래서 ‘휴가 후유증’을 앓기도 한다.

지금껏 그랬다면 이번에는 색다른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휴가철과 방학을 맞아 전국 100개 사찰에서 ‘여름 템플스테이’를 꾸린다. 사찰마다 10인10색, 내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은 어떤 걸까.

◆사찰에서 맡는 차향=남도의 사찰에선 직접 차(茶)를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꾸린다. 김제 금산사 ‘전통차 만들기’, 해남 대흥사 ‘제다실습’, 장성 백양사 ‘발효차 만들기’, 고창 선운사 ‘햇차 만들기’, 구례 화엄사는 ‘야생차 만들기’를 꾸린다.

절집에선 선(禪)과 차(茶)를 하나로 본다. 차를 만들고, 차를 우리고, 차를 따르고, 차를 마시는 과정을 통해 선의 향기를 만끽하기 때문이다. 처마 끝 풍경 소리와 함께 내 손으로 직접 차를 덖는 일도 일상에서 맛보기 어려운 경험이다.

◆어린이도 템플스테이=여름철 절집이 서당으로 바뀐다.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와 서산 부석사에선 ‘한문학당’을 꾸린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문도 가르치고, 전통 문화도 체험케 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김천 직지사에선 ‘원어민 교사와 함께 하는 영어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MIT 공대를 졸업한 원어민 교사 2명과 한국인 보조 교사들이 자연체험 놀이를 영어로 진행한다. 사찰 체험도 하고 영어도 배우고 ‘일석이조’다.

이밖에도 선무도로 유명한 경주 골굴사 ‘화랑수련회’, 나주 심향사 ‘푸른연꽃 하늘날다’, 밀양 표충사 ‘어린이 사명당’ 등 전국 32개 사찰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름휴가가 하안거=수행이 출가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휴가를 맞은 재가자에게 직접 선(禪)수행을 지도하는 사찰도 여럿이다. 조계종 교구본사인 송광사와 수덕사·고운사·동화사·통도사·은해사 등에선 여름 선수련회를 마련한다.

“참선이 그리 쉽나. 휴가가 얼마나 된다고 마음을 찾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선수행 템플스테이를 통해 마음을 찾는 ‘방법’을 익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운 방법은 직장으로, 학교로, 가정으로 돌아간 뒤에도 짜증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템플스테이의 하루는 어떤 걸까?=대구 동화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내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일정은 2박3일이다. 첫날은 사찰 기본예절을 익히고, 스님과의 차담, 누워서 하는 명상법 등을 배운다. 둘째날은 오전 3시에 기상한다. 4시 새벽예불에 참석, 명상을 체험한다. 캄캄한 산중의 고요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값진 시간이다. 아침 공양(식사) 후에는 숲길을 걸으며 명상하고, ‘삶을 찾아서’란 주제로 스님의 법문도 듣는다. 이어 다도 체험, 발우공양, 한시 배우기, 누워서 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마친다. 마지막날은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이라면’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유서를 쓴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과 가족, 이웃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 사찰 순례 및 성보박물관을 돌아본 뒤 ‘나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간다.

사찰마다 마련한 템플스테이의 일정과 프로그램은 각각 다르다.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프로그램을 고르면 된다. 2004년부터 시작한 템플스테이는 매년 참가자가 30%씩 증가, 지금껏 35만 명이 사찰체험을 했다. 참여 사찰도 5년 전에는 34곳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80곳, 올해는 100곳으로 늘었다.

초기부터 참여해 ‘템플스테이 개척자’로도 불리는 마가(천안 만일사 주지) 스님은 “템플스테이는 쉼을 통해 자신을 충전케 한다. 그리고 사찰을 나설 때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진짜 나’라는 걸 절감케 한다. 특히 마음공부 프로그램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자신감과 에너지를 안고 살아가게끔 한다”고 설명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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